현지우거 중묘지문 玄之又去 衆妙之門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둠이 가장 짙은 곳에 지혜로 드는 문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집이나 건물에 들어갈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 바로 현관 玄關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검을 현, 누룰 황 할 때의 그 현 자입니다. 한자 현은 누에가 고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입에서 실을 뽑는 행위와, 그 고치 안에서 누에가 나비로 변화하는 과정을 형상화한 단어입니다. 왜 현은 그럴 의미를 담고 있고, 현관에 굳이 왜 현이라는 한자를 썼을까요.
우리가 새로운 곳으로 갈 때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관은 안도 밖도 아닌 경계입니다. 이제 한걸음은 더 내딛어 안으로 들어가면, 혹은 밖으로 나오면 그때 우리는 새로운 마인드셋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현관에 서서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 아주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현관이라는 좁다란 공간에 홀로 서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나 혼자서 이 걸음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고독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관은 어둡습니다. 다음 걸음을 알 수 없으니까요. 현관은 어두운 곳이기 때문에 검을 현을 쓴 것이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해 고치 속에 있기 때문에 현을 쓴 것이며, 나비로 변모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현을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지우거 중묘지문의 의미는 현관의 의미와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검은 어둠 속에 있을 때 지혜로 드는 문, 즉 현관이 열린다는 의미겠지요. 그리고 현관이 열리면 우리는 그 경계를 가로질러 나가며 나비가 될지, 아니면 이쪽에 머무르며 고치로서의 삶에 만족할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변화는 두려운 것이니까요.
어둠에 머무르고 있는 시간은 참 견디기 어렵습니다. 빨리 해가 뜨길 바라고, 그게 아니라면 작은 촛불이라고 켜졌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사방팔방이 어둠으로 막혀 있을 때 어디로 가야하는지 누군가 알려준다면 용기를 내서 한발짝을 내딛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준다면 그 손을 잡고 목적지가 어디라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혼자 남겨진 그 좁은 현관이 좁디 좁은 낭떠러지처럼 느껴지겠죠.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치 안에 갇혀서 결국 고사하고 마느냐, 아니면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저 건너편으로 가는 한 걸음을 내딛느냐 하는 결정을 말이죠.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결국 또 우리는 그 결과를 감수하고 살아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게 성인의 의무이죠. 자신의 말과 행동에 따르는 결과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원칙이니까요.
세상에는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도 있고, 공부를 하는 이들도 있고,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스스로를 갈고 닦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고치를 짓고 각자의 색깔을 뽐내며 날아오를 나비가 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입니다. 설령 높이 날지 못하더라도, 설령 바로 저 앞에 보이는 나뭇가지까지 밖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들 각자는 각자의 날개로 각자의 하늘을 날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결국은 그때가 올테니 모두 용기를 갖고, 나의 속도로 고치를 지으며 현실을 견뎌냈으면 합니다.
요새 연속해서 조금 어두운 글을 올리게 되네요. 이 역시도 새로운 곳으로 가는 문으로 가기 위해 어둠 속에 임하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글을 읽으신 분들 모두 하루를 잘 견뎌내고 내일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이 결국 인생의 본질이고, 그렇게 쌓여나간 하루하루가 모여서 날아오를 날개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변화하는 방식의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나가야 하니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나가야겠죠. 저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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