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생기는 문제를 모두 해결하면 참 좋겠지만,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보다 나이가 좀 적었을 때에는 문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고, 끝까지 해결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 삶의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았고, 내 삶에 직결된 문제들은 내 삶의 조건들을 수정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어릴 때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도 달랐고, 시야도 지금과는 달랐었기 때문에 지금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들만 눈에 들어왔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바꾸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삶의 범위가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넓어지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가지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고, 역할에 따라 나의 영향력이 미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그저 예속된 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더군요. 만약 분명히 내가 그 그룹 내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력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고, 이건 내가 어떻게 해도 바꾸기가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저 포기하거나 아니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무력감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삶의 어떤 것들은 전혀 바꿀 여지가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생물학적 조건이라든지, 나의 과거라든지, 나의 배경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혀 바꿀 수가 없습니다. 미디어에서는 한 개인이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원하다면, 그리고 원하는 것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면 무엇이든지 다 이뤄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한 개인에 있어서도 세월에 따라 크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전 그랬습니다. 어릴 때에는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져있고, 잠재력의 한계가 어디인지 아직 자각하지 못했을 때이기 때문에 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젊음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이 그런 꿈을 가지지 않으면 그 사회에는 문제가 있어도 크게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나이가 조금씩 들고 사회와 세상이라는 것이 나 혼자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나면 이 생각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제는 미디어에서 인간이 가진 무한대의 잠재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가끔은 과거가 그립기도 하고, 가끔은 참담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저 문구를 쓴 사람들은 정말 저 말을 믿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 사람들에 대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비웃거나, 얼른 철 좀 들라고 독촉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게 가능한 것일까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자꾸 드는 것이지요. 그래선 안 되겠으나 정말 세상에는 불가능이란 없을까 하는 패배주의적 사고가 고개를 쳐드는 것이지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단념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노력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런 개인들이 모여 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은 권리이니까요.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아니면 체념하고 외면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냥 그런 것들은 잊고 하루를 즐겁게 살면 됩니다. 이것도 매우 좋은 대응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행복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요.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지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이겠지요. 비교적 자신이 높은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을 수 있으니까요.
어떤 방식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다면 좋은 것 같습니다. 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복잡하고, 빠르고, 또 갈등이 심하니 바꿀 수 있는 것과 받아들여야 할 것을 잘 구분하기조차 어려워지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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