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표현해서 그것을 남들에게 이해시키고 공감하게 하는 것은 더욱더 어렵습니다.
하루키의 단편 중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깊디 깊은 슬픔에는 눈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다. 나는 슬픔을 견딜 수 없어서 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깊은 슬픔이 눈물마저도 빼앗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혹시라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런 슬픔은 다른 어떤 형태로도 바뀌어지지 않고, 다만 한 줄기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밤에 내리는 눈처럼 그냥 마음에 조용히 쌓여가는 그런 애달픈 것이다. 조용히 쌓이는 눈은 슬프다.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나는 그런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지 언어로 표현해 보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무에게도 전달할 수 없었고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도 전할 수없어서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언어를 폐쇄시키고 나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화를 낼 수도 있고, 짜증을 부릴 수도, 목놓아 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에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도저히 말로 담아낼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닫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이것을 잘 표현해 낸다고 해도 누군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내 말이 제대로 가서 닿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죠. 인간이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고립과 추방입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죠. 척박한 환경이라면 혼자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추방은 매우 큰 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회로부터 추방된 죄수들을 또다시 추방할 순 없으니 내리는 벌이 바로 고립된 채 독방에서 혼자 지내게 하는 것이지요.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그때 우린 고립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추방되거나 고립당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고, 주변에 이야기할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지요. 이때 개인은 고립됐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또 한 번 고통을 받게 되죠. 주변에서는 이런 개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힘차게 인생을 살아나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나가자고 하고, 산책을 하자고 하고, 등산을 하자고 합니다. 억지로 꾸역꾸역 그것들을 같이 하고 나서도 변화 없는 그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는 질책과 비난을 시작합니다. 내가 이 정도 노력을 했는데 왜 넌 바뀌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럴수록 더 할 말은 없어지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며 고립감도 심해집니다. 그렇게 어깨 위에 조용히 쌓이는 눈은 천근만근의 돌덩이가 되어 나를 짓누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이런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글을 쓰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눈이 그치고 봄이 오길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내가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더 잘 끄집어낼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운 좋게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 모든 눈이 녹아 해결이 되는 것인지.
인간의 변화는 지난한 것입니다.
아주 천천히 변화하지요. 매일매일 보는 화초는 뭐가 달라졌는지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아무 많이 변화해 있는 것처럼 인간도 그런 식으로 느리지만 꾸준히 변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제3자는 더욱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가장 힘듭니다. 나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주변에서는 나를 채근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실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더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으니까요.
결국 내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모두 우리로 인해 행복하면 좋겠고 저도 그것을 바라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 주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어둠 속에 놓여 있다면 결국 그 어둠을 헤치고 나오는 것은 나 자신이니, 앞을 보고 천천히 걸어 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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