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우리의 정신을 병들게 합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있죠. 아마 외로움은 인간을 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인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고립을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인적이 없는 오지나 노지까지 가서 캠핑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있을 때에도 자신만의 추상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사용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만 정신을 집중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복잡해지기 전에는 도시에 사는 것이 특권이었고 압도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허허벌판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야 하는 운명이 결정된 젊은이들에게는 시끌벅적한 도시에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매캐한 매연 때문에 기침을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서 지저분하고, 사기꾼들한테 뒤통수를 맞을지 몰라도 도시의 불빛은 늘 사람들을 유혹해 왔습니다. 도시는 쉽게 취득할 수 없는 자원이었고, 따라서 비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반대의 상황이 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잡한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인구가 천만 명이 넘는 도시에 살며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는 지하철 안으로 자신의 몸을 구겨 넣을 때면, 그리고 하루 종일 울려대는 스마트폰의 알람이 나중에는 환청처럼 들려올 때면 정말 사람이 싫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그나마 몸을 뉘일 수 있는 집도 대부분은 아파트나 빌라, 오피스텔 같은 것들이어서 옆 집과 윗 집의 소음이 들려오고,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만나도 불가피하게 일어납니다. 이럴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예전에는 사방팔방에 널려 있었던 “자연”이라는 자원은 이제는 매우 희귀한 것이 됐습니다. 숲세권 아파트가 비싼 이유가 그것이겠지요. 도시에 살면서도 숲을 즐기고 싶은데, 숲 자체라 희귀한 자원이 된 것이니까요. 이제 도시는 싸지고, 자연은 비싸졌습니다. 과거에는 도시의 삶이 특권이었지만, 이제는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큰 특권입니다. 자연에 산다는 것은 출퇴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기도 하고, 아파트에 살지 않으니 집을 되팔 때 보는 손해나 놓치게 되는 이익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자연이 훨씬 더 비싼 자원이 됐습니다.
적극적 고립에 대한 논의가 가능한 것은 자연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일시적이기 때문입니다.
장박을 한다고 해도 평생 캠핑을 하면서 사는 이들은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도 결국 돌아갈 집이 있고 내 침대에 누웠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은 여행과는 또 다른 것입니다. 누구나 자발적 고립을 원하는 세상이지만 그 고립이 죽을 때까지 평생 이어져야 한다고 강요당한다면 그것을 쉽사리 결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할 때 인간관계로부터 잠깐 벗어날 수 있는 자유와 언제든 내가 원할 때에는 스위치를 눌러 내가 원하는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두 가지 자유 모두입니다. 벗어날 수만 있고 돌아갈 수 없다면 그 일방향 스위치를 누를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게끔 되어 있으니까요.
5만 년 전으로 돌아가보면 이 그림이 이해가 보다 쉽습니다. 지금과 같은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던 시절에 고립은 곧 생존을 포기한다는 말과 동의어였습니다. 자기 혼자서 거주지와 식량 등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자급할 수 있는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밤에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르는 포식자들 때문에 밤을 새워 불침번을 서는 것을 연이틀 하기도 어렵습니다. 내가 잘 때 위험을 감시해 줄 동료가 없으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혼자 있게 되면 그때부터 인간은 불안과 초조를 느끼며 동료들을 찾아 나서게끔 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리 속에 끼게 되면 그때는 안도감을 느낄 것임에 분명하고요. 만약 한 달 내내, 1년 내내 혼자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불안감에 대처하느라 몸과 마음이 닳아 없어지겠죠. 그래서 외로움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외로움은 매우 주관적인 경험입니다.
대가족 속에서 살며 수없이 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해도 실존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 반면, 누가 봐도 매우 협소한 관계 외에는 아무런 인적 자원이 없는데도 자신은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고 오히려 늘 연결감과 소속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결국 누가 외로운지는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 우리의 외로움을 잘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고, 만약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좋은 관계는 좋은 음식, 맑은 공기, 시원한 물만큼이나 우리의 생존에 중요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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