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낙관주의 cruel optimism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에 대해서 너무도 간단하고 개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것이 늘 좋을 수는 없으며, 가끔은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잔혹한 낙관주의란 역사학자 로렌 벌렌트 Lauren Berlant 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매우 복잡한 인과 구조를 가지는 동시에 사회 저변에 매우 뿌리 깊고 폭넓게 자리 잡고 이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그건 사실 ~~ 문제야!”라고 하면서 단순화시키고, 더 나아가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매우 간단히) 해결돼!”라고 하며 매우 개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 중독,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 같은 중독 문제나 우울, 불안, 자살 등의 문제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중독이나 우울, 그리고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약물이나 알코올에 중독됐었지만 빠져나왔거나,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개인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다른 사람들은 유튜브나 SNS에 중독되고,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울감과 초조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으로부터 매우 자유로운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이들이 악하거나 어떤 악의를 가져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단순히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특정 시간에는 알림이 오지 않도록 해놨더니 좋아지더라”, “나는 꾸준히 운동을 했더니 우울감이 사라지더라”, “요가를 하고 명상을 했더니 불안감이 좋아지더라”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이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유효한 해결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누군가에는 유용한 대응 전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비교적 쉽고 간단할 수 있는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천근만근만큼 무거운 선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경제적 조건 속에서 살며 거주 환경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이들의 집을 예쁘고 보기 좋게 고쳐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취지는 좋은 프로그램이 분명했습니다. 어두컴컴하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 핑크빛 벽지로 새로 도배를 하고 가구 배치를 바꿔 볕과 바람이 들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집을 고쳐준 것까지는 좋은 일이지만 그 이후에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런 환경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회,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방에 이층 침대를 놔주는 것이 그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다리를 놔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겉모습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그런 겉모습의 이유가 되었던 뿌리 깊은 이유 - 그것이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이든 이든 간에 - 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방을 조금 고쳐주지만 현실은 그대로 두는 것은 어둠을 반짝이는 것으로 잠깐 가리는 것, 혹은 어두움에서 눈을 돌리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에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어찌 보면 잔혹한 일이지요. 그 사람들에게 “예쁜 이불을 덮고 잔다고 해도 내 삶은 그대로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니까요.
또 다른 예가 태풍 카타리나로 완전히 파괴되고 초토화되었던 도시 뉴올리언즈입니다.
몇몇 학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뉴올리언즈의 상황은 태풍 카타리나가 할퀴기 전에도 절망적이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경제적 난관에 봉착해 있던 쇠락해 가던 도시에 불어닥친 태풍은 절망을 가져오기에 충분하죠. 그래서 미국은 뉴올리언즈에 재난 복구 기금 2000억 달러를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도시를 재건하는 데 쓰였습니다. 러브하우스와 똑같습니다. 이미 절망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에게 절망에서 벗어날 교육의 기회나 일자리나 돈을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을 고친 뒤 “거기 그대로 있으라”고 말한 것이지요. 러브하우스의 2000억 달러 버전이지요.
이 모든 것들이 참혹한 낙관주의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주변의 환경을 조금 바꿔주면 그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지겠지라는 기대는 문제를 개인화하는 데서 발생하지 않을까요? “나는 잘 정리정돈된 환경에서 살았더니 성공했다”는 말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잘 정리정돈된 환경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안정이 이미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난 식이 조절을 하고 운동을 했더니 체중이 줄더라, 그러니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일 수 있지만, 매일 신선한 샐러드와 두부와 유기농 채소를 챙겨 먹으며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하루하루 힘들게 일하며 아이 셋을 키워야 하는 한부모 가족이라면 음식과 운동을 챙기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요가를 하고 마음 챙김을 해라, 그럼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도 사실일 수 있지만, 평소 명상을 할 수 있다는 건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립한다면 해결책 역시 개인화하는 것이 매우 당연해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지만 당신이 그렇게 사는 것은 당신의 잘못도 커, 그러니까 거기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라고 누군가를 윽박지를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디딤돌과 밧줄 없이는 그 함정에서 뛰쳐나올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SNS과 스마트폰 중독, 온라인 도박, 만연한 우울과 불안 등의 문제는 그 전부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시스템의 기여가 너무 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개인은 체제에 저항하기 매우 어렵고요. 거시적인 시각과 해결책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를 개인에게 내던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동시에 이 모든 문제가 전부 사회의 탓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개인은 그 책임으로부터 모두 벗어나야만 한다는 생각 또한 온당하진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와 해결책을 찾을 때 극단적인 사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참고 문헌 :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경제학 콘서트(팀 하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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