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를 내부적인 생물학적 이상에서 기인하는 병으로 볼지, 아니면 외부적인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반응으로 볼지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정신장애는 둘 중 어느 것 하나의 전적인 기여가 아니라 유전자와 환경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서로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발생하는 것이라는 의견은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정신장애, 혹은 정신질환은 사회 내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샤먼으로 보기도 하고, 예언자로 보기도 하고, 마녀로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존재로 보고 배에 태운 뒤 죽을 때까지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셸 푸코는 “광인은 외부의 내부에 놓이고 역으로 내부의 외부에 놓인다”고 표현했습니다. 광인들의 항해는 한 번 시작되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원론은 정신장애에 대한 시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정신장애를 육체적 질환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사고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이원론 (Dualism) 때문입니다. 이원론은 말 그대로 육체와 정신이 따로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개념입니다. 육체는 기계이며, 영혼은 그 기계에 깃들어 있고 육체가 쇠하고 나면 영혼을 육체를 떠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그들의 영혼이 우리를 지켜보며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한계는 쉽사리 인정하지만, 정신의 힘에는 아무런 한계가 없어서 “정신만 차리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을 쉽게들 합니다. 만약 정신이 육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육체의 한계에 따라 정신에도 한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논리적일 테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원론은 병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강력하게 규정합니다. 타고난 육체적 질환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보이지만, 정신이 아픈 것은 도덕적 타락과 정신적 해이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이지요. 이런 논리에서 보면 광인들은 도덕적, 종교적, 윤리적으로 타락한 것이기 때문에 치료가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원론에 대한 강력한 믿음, 그리고 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대에는 미셸 푸코가 말했던 광인들의 항해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대응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신경과학은 뇌와 정신장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뇌의 특정 부위의 선천적/후천적 결손 혹은 결함이 기능의 상실 혹은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는 증거들이 서서히 축적되어 나가며 뇌의 기능과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는 넓어지고 깊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경과학, 그리고 정신의학은 정신장애에 새로운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이를 병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정신장애, 혹은 정신질환이라는 말도 생겨났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광기로 치부되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병이 된 것이지요. 광기에는 처벌과 격리가 답이었다면, 병에는 치료와 보호가 정당한 대응 방식일 테니 이것은 매우 큰 변화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장애를 뇌의 결함, 생물학적 이상, 유전자의 문제 일변도로 보는 시각에도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정신장애는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원인이 서로 복잡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발생하고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 현대적 정신의학의 기본적 전제입니다. 세 요인 중 어느 한 가지가 더 크게 작용할 수는 있겠으나 세 요인 중 어느 한 가지만 발병과 진행에 기여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뇌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신경전달물질, 뇌영상 증거가 쌓여가며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원인 중 생물학적 원인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의 교란, 호르몬의 불균형, DNA의 문제 등 생물학적인 결함이 정신장애의 주요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장애를 치료하려는 시도가 주류가 된 것이지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 대한 시각과 의견 역시 이를 병으로 보느냐, 아니면 반응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당뇨나 암에 걸린 환자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병에 걸린 것은 불운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들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독촉을 하지 않죠.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정신질환을 생물학적 병으로 보는 것이 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희석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관절염, 허리 디스크 등을 볼 때와 같은 논리로 우울증과 조현병을 바라본다면 이들은 정신적 나약하거나 타락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물리적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매우 단순한 논리였습니다.
한 연구에서 정신질환을 병으로 본다고 해도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정신질환이 생물학적, 혹은 생화학적 무질서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까?”하는 의문에서 시작한 연구였죠.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에게 사전에 훈련된 연기자를 소개했습니다. 연기자들은 모두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두 부류로 나뉩니다. 첫 번째 그룹은 “생화학적 문제”가 있어서 병에 걸렸다고 이야기하는 그룹, 나머지 그룹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아서” 병에 걸렸다고 하는 그룹입니다. 피험자들은 이 연기자들에게 복잡한 순서로 버튼을 눌러야 하는 과제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는데, 연기자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빨간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빨간 버튼은 연기자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게 되고(실제로 가해지진 않습니다) 연기자들은 고통스럽다는 듯 연기를 합니다. 연구 결과, 자신의 정신질환이 생화학적 문제 때문이라고 이야기한 그룹에 대해 피험자들은 전기충격을 가할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신질환은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감소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혹은 마약 중독자들에 대한 시각은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 중독은 다른 정신장애와는 달리 불법적 물질이 관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병, 환경의 층위에 불법적 행위를 기꺼이 할 수 있느냐 하는 도덕적 층위까지 덧입혀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약 중독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을 병이라고 생각하든 하지 않든 도덕적인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경향을 배제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합법적인 물질인 알코올에 국한 지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알코올 사용 장애를 병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개인 의지의 실패라고 생각할까요. 물론 두 가지 의견이 혼재합니다. 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치료를 받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화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라고 생각한다면 병에 걸린 것은 이들의 잘못이 아니므로 이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고, 후자라고 생각한다면 윤리, 도덕, 종교 등의 규준으로 그들을 비난하고 힐책하는 것에 문제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실험을 보면 이들에 대한 문제가 이렇게 깔끔하게 분할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병이라고 규정을 해도 그들을 비난하며 치료가 아닌 처벌을 받게 하자는 생각으로 논의가 전개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정신질환자들은 생물학적 문제로 인해 병에 걸린 것도 힘든데, 그로 인한 사회적 편견과 비난까지 감수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병이 발생하는 데에는 유전자와 환경, 개인적인 요인과 사회적 요인이 모두 작용합니다.
우리는 이 요인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모두 이해할 순 없을 것이지만, 이 상호작용이 발병에 관여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혹은 어떤 병을, 그리고 어떤 병에 걸린 누군가를 이해하고 돕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생물, 심리, 사회적 원인 중 두 가지를 배제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관여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접근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람이 생물학의 피해자인 동시에, 사회적인 소수이고, 그로 인해 그들이 사는 방식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한다면 비난이나 동정이 아니라 이해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조금 깊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정적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 | 적절한 감정의 쌍을 가지는 것 (328) | 2024.07.30 |
---|---|
감정에 압도 당하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없을지 모릅니다. | 정서 우선성 Affect Primacy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This too shall pass (397) | 2024.07.27 |
우리는 미래와 연결된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요? | 욜로 YOLO 가 무조건 나쁠까요? (384) | 2024.07.20 |
잔혹한 낙관주의 | 러브하우스의 함정 |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개인적 해결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Cruel Optimism (407) | 2024.07.09 |
뇌는 변화를 감지합니다. 그리고 일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 대비 감지기 | 탐지기 (465) | 202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