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감정에 압도 당하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없을지 모릅니다. | 정서 우선성 Affect Primacy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This too shall pass

RayShines 2024. 7. 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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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 우선성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경험을 할 때 우리의 뇌가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이 바로 정서, 즉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면 우리의 뇌는 이것이 새로운 것이라는 것을 그 즉시 알아차립니다.

반면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에 뇌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만약 매일의 경험이 배경에 깔려 있는 일종의 화이트 노이즈라면, 새로운 경험은 그것을 뚫고 우리의 고막을 때리는 멜로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현저성 salience 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뇌가 어떤 것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고, 즉 그것으로부터 현저성을 감지하면 뇌는 즉각 거기에 반응합니다.

 

 

 

그런데 이때 가장 먼저 촉발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이 정서 우선성의 개념입니다.

생각보다 감정이 선행한다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자극이 발생하면, 그것을 인지적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감정이 발생한 뒤, 최초의 자극에 대한 총체적 반응으로서의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극, 인지적 해석, 감정, 행동의 순서로 인간이 반응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서 우선성은 이 순서가 틀릴 수도 있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실 정서 우선성의 개념은 미국이 낳은 위대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1884년 발표한 <감정이란 무엇인가? What is an Emotion?>이라는 논문에서 “우리가 곰을 만났을 때 두려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라 떨고 있기 때문에 두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감정이란 신체적 반응 그 자체이며, 그다음에 이것을 해석하여 인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심장이 쿵쾅 거리는 신체적 - 혹은 감정적 - 반응이 발생했다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이것이 곧 치를 중요한 구술시험 때문이라면 이것은 긴장으로 느껴질 것이고, 몇 분 뒤에 탈 전 세계에서 제일 높고 빠른 롤러코스터 때문이라고 하면 스릴로 해석될 것이며, 너무나도 기대하던 데이트 상대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면 설렘이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즉 같은, 혹은 비슷한 반응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어떤 맥락이나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이 이론들이 사실이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느끼는 신체적 반응이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선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어떤 일이 있었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발생하는 신체적 반응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누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면 심장이 빨리 뛰고, 혈압이 상승하고, 숨이 거칠어집니다. 이것은 막기란 불가능하죠.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반드시 “화”나 “분노”로 해석하고, 창문을 내린 뒤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정서나 감정은 자연 발생적이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감정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을 때 다음 날까지 심장이 쿵쾅거리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저 몇 분 정도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일단은 진정이 되지요. 물론 그때의 경험을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회상하게 되면 숨이 가쁘고, 심장 쿵쾅거릴 수는 있겠지만 이것은 회상에 의한 것이니 그때의 감정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즉 감정은 지나갑니다. 

 

만약 운전 중 누군가 갑자기 끼어드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전혀 아무런 제어나 제동 없이 그 감정을 화로 해석하고 그에 맞춰 반응을 한다면 공격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단 1분 만이라도 그 감정, 즉 강해진 심장 박동, 붉어진 얼굴, 을 차분하게 지나가게 둔 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을 작동시킬 수만 있다면 해석 가능한 가짓수가 현저하게 늘어납니다. “아 급한 일이 있었나 보다”, “초행길인가 보네” 등 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적응적인 인지적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아니면 화를 내는 것이 나에게도 파괴적인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막기 위한 “합리화”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이것을 뭐라고 부르든지 만약 우리가 우리에게 발생하는 감정적 반응에 대해 즉각적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의 실수가 정말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너무 화가 났을 때 했던 말들, 너무 행복했을 때 했던 지킬 수 없는 약속들, 취해 있을 때 내렸던 근시안적 결정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감정에 압도된 나머지 우리가 쓸 수 있는 가장 예리한 무기 중 하나인 인지적 기능을 꺼내보지도 못한 채 패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라는 격언이 있지요.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린 결정의 결과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감정을 지나가게 두고, 천천히 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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