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우리는 미래와 연결된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요? | 욜로 YOLO 가 무조건 나쁠까요?

RayShines 2024. 7.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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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에도 우리가 우리였고, 현재 우리가 우리이며, 미래에도 우리는 우리일 것이라는 본능적 믿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계열을 꿰뚫고 흐르는 우리 자신에 대한 감각, 우리가 우리로서 존재한다는 이 감각이 정체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감각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내가 축적해 온 물질일 수도 있고, 내가 구사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일 수도 있고, 나의 직업일 수도 있고, 나의 몸일 수도 있으며,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로서 존재해 왔고 존재할 것이라는 정합적인 감각도 정체성에 매우 중요합니다.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블랙아웃이 발생한 다음 날 아침, 혼란스러움과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마땅히 연이어 나만의 수로를 따라 흘렀어야 할 정체성의 물줄기가 중간에 끊기고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미래의 내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존재하고 있는데 그 결과로 존재해야 할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떨지 내가 느낄 수 없고, 상상할 수조차 없다면 지금의 나는 내가 맞는가는 의문이 들 수 있겠죠.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서 비롯됐을 것이 분명한데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니라면 과거의 나는 내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당연히 들 것이고,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입니다. 나는 나인가.

 

원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만 제도가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에 개인이 대처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해줘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인간은 비전이 없으면, 미래에 대한 조망이 없으면, 꿈이 없으면 나 자신을 잃게 됩니다.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고 최소한 상상이라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현재의 나를 미래로 투영해 그 둘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갖고 미래를 조망하고 미래에 투자하고 미래를 위해 현실을 어느 정도 뒤에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의 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현재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희망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고, 만족은 미루고, 꾹꾹 참으면서 살아야 할까요.

 

요새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을 보면서 저축을 안 한다, 아무런 일도 안 한다, 오늘만 살 게 아닌데 저렇게 돈을 펑펑 쓰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맞는 말 같아 보이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20, 30대들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미국의 경우 밀레니얼 세대, 즉 Y세대는 미국 전체 부의 4.6%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들의 부모인 X세대와 베이비붐 세대는 미국 전체 부의 53.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Z세대나 알파 세대는 지금 너무 어리기 때문에 정말 운 좋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부를 축적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죠. Z세대를 1995년 이후 생이라고 봐도 가장 나이 많은 Z세대가 지금 서른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요. 즉 X세대와 베이비붐 세대는 MZ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일자리도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웠고, 자산의 가격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사기도 조금 수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시절에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한 달에 얼마를 벌어서 10년을 모으면 집을 사고, 그리고 그땐 월급이 얼마나 될 것 같으니 그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겠다는 청사진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의 청년층은 그런 인생의 블루프린트를 그릴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현재를 최대한 만끽하는 게 최선이겠지요. 어차피 미래가 없는데 구태여 노력하고 참고 기다리고 할 필요 없을 테니까요. 지금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현실을 소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일지도 모릅니다. 오지 않을 미래, 온다고 해도 어두울 것만 같은 미래를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리며 현재까지 좀먹는 것이 과연 기성세대들이 지금의 청춘들에게 바라는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청년세대들이 희망을 갖고 진취적으로 살아가길 다들 바라지요. 그런데 그 바람이 그냥 단순히 열심히 해라, 나가서 뭐라도 하라는 명령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서도 계속 이야기했듯이 기성세대들이 젊은 시절을 보내던 때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젊은 시절을 보내는 지금은 미래에 대한 뷰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들은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욜로를 부르짖는 건 아닐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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