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극단적인 감정은 우리를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내몰지도 모릅니다. 감정적 중립이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감정만을 가진 채로 살아가라는 뜻이 아니라 서로 대칭되는 감정을 모두 적절히 가지도록 노력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예전에 도덕, 윤리 수업 시간에 자주 듣던 중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 시간에 외웠던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넘치도 모자라지도 않는다는 개념, 적절한 균형이라는 개념이 매우 친숙합니다. 그런 가르침이 사회 안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그냥 중간만 가라, 튀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등 개인의 개성을 억제하고, 집산주의적 행태를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뭔가에서 균형을 찾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지요.
워라밸에서만 밸런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에서 밸런스는 궁극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상당 부분은 감정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감정으로 채워져 있다는 표현보다는,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가 감정으로 물들어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세상은 하나의 객관으로 존재할지 모르나, 우리가 받아들이는 세상은 매분 매초 달라지는 감정에 따라 휙휙 바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삶의 그 어떤 부분에서보다 감정적 생활에서 중용과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은 우리의 인지과정과 행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감정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내리는 많은 결정들, 솔직히 대부분의 결정들, 은 심사숙고를 거친 뒤에 내려지지 않습니다. 점심 식사 후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라테를 마실지, 집에 가는 길에 신호등이 주황불일 때 가속해서 지나칠지 무리해서 정차할지, 저녁 메뉴로 뭘 고를지, 반주를 할지 말지 등등 사소한 결정들은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그때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저녁 메뉴와 반주의 종류가 달라짐을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너무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는 더 자극적인 음식이 당기고, 시원한 맥주 한 잔도 곁들이고 싶은 법이니까요. 그저 평이한 하루였다면 “오늘은 건강하게 샐러드를 좀 먹어볼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즉 우리의 많은 결정은 감정에 의해 매우 크게 영향받습니다.
감정은 매우 급하게 변하고, 같은 감정 내에서도 그 진폭이 매우 큽니다. 매우 극단적인 확신에서부터 단 10초도 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할 정도의 불안 초조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리고 매우 큰 스트레스, 좌절, 실망, 혹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 행복, 설렘 등이 발생했을 때 감정의 강도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도 합니다.
감정적 균형을 지키라는 말은 양 극단의 감정을 배제한 채 그저 맹숭맹숭한 감정만을 느끼며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요. 감정적 균형은 서로 쌍을 이룰 수 있는 감정을 모두 적절한 강도로 가져가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100%의 믿음만 가지는 것과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100%의 불안 중 단 하나만 가지는 것으로는 세상에 적응해내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100% 호감만 가지는 것과 누군가에 대해 100%의 반감을 가지는 것으로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고요. 어떤 일에 대해서 파괴적인 수준의 분노만 느끼는 것과 분노할 일에도 분노하지 않고 늘 웃는 모습만 보이는 것 역시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 매우 큰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가 가진 다양한 감정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진화했을 것이고, 이득이 있어서 우리의 유전자 풀에서 퇴출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가지 감정이 너무 강해질 때 그것의 대척점에 있는 감정의 존재에 대해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망상에 가까운 확신이 느껴지면, 의심을 통한 불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누군가에 대한 너무나 강력한 적의가 느껴진다면,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을 떠올리며 부정적 감정의 파괴성을 녹여낼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삶에는 늘 일들이 일어납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일도 있고, 부정할 수 없이 나쁜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과 마음과 감정에 따라 좋은 일이 되기도, 나쁜 일이 되기도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들이 더 많지요. 여기서 우리의 감정적 균형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저 중립적 자극들을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해석하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진자처럼 계속해서 움직이는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춰 보다 더 적응적인 반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감정은 느껴지는 것이지만 늘 삶에 대한 정답이 될 순 없습니다.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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