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 숫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인구를 5136만 명으로 봤을 때 1.94% 정도에 해당합니다. 그리 많은 비율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20대의 우울증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희망이 없다, 미래가 어둡다"는 느낌은 우울증 환자들이 흔히 호소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우울증의 진단 기준에는 구체적으로 들어있지 않지만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 중 하나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울증 진단 기준 중 사고의 내용과 관련된 증상은 무가치감,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죄책감, 자살사고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비관적, 부정적, 파국적 사고는 진단 기준에 들어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미래를 염세적으로 본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이 가능한 일이지요.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숫자는 2018년 75만 명에서 2022년 00만 명으로 33%로 급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수치보다 더 심각한 것은 다른 연령대보다 20~30대의 우울증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체 우울증 환자 중 20~30대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26%에서 2022년 36%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20대 여성 우울증 환자는 2018년 5만 7천696명에서 2022년 12만 1천534명으로 무려 110%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기성세대들은 젊은 자체가 자산이라고 생각하며 청년들의 젊음을 찬양하고, 가끔은 젊음이라는 자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며 청년들을 나무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우울감을 느낀다고 해서 다 병원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 제시된 통계자료는 심평원의 자료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의 숫자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지요. 따라서 실제로는 저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그렇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기성세대들의 기대나 바람과는 달리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 혹은 우울장애가 누군가가 생각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한 연구자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기획했습니다. 그는 청소년들을 거식증 그룹과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우울증 그룹으로 나누고 크리스마스 캐롤과 레 미제라블을 읽도록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유령들을 만나고 난 뒤에도 스크루지는 과거의 그 스크루지일까”, “탈옥하고 이름을 바꾼 이후에도 장발장은 동일한 인물일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답을 할 수 있는 간단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거식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이런 종류의 질문에 쉽게 답변을 했지만, 우울증 아이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연구자는 이 현상에 대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한 사람이 어떤 식으로 계속 동일한 인물임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또한 우울증 아이들은 자신이 미래에 어떨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매우 당황하며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답변은 “정말 아무런 생각도 안 나요(I don’t have the foggiest idea)”였습니다.
이 실험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순 없겠지만, 우울증은 환자로 하여금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끊어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혹은 미래와 나와 현재의 내가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이 우울증의 원인일 수도 있겠지요.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우울감과 미래감의 상실이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청년층의 우울증 비율이 높아지는 사회의 미래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10대, 20대가 자라서 30대, 40대가 됩니다. 그런데 10년 뒤에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될 20대들이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는 말은 이들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 됩니다.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인구에서 우울증이 만연하고 있다면 그 사회 전체 역시 건강한 미래상을 잃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 사회 역시 현재라는 지점과 연속선 상으로 연결된 미래의 사회라는 감각과 정체성을 상실하고 현재에만 집착하며 장기적인 시각과 계획을 가지고 추진해 나가야 할 일들을 우선순위에 올려둘 육체정, 정신적 여유를 모두 잃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개인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잃게 되면, 그 사회 역시 비전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자원이나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테니까요. 같은 논리로 사회가 적절한 비전을 개인에게 제시하지 못하면 개인 역시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지조차 않을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환경이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이 주가 되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은 미래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현재에 최대한 충실한 것이 될 테니까요.
청년층에서 느끼는 우울감, 박탈감, 무망감은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분명히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이 풀고 극복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적절한 안전망을 구축해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책은 비교적 일관적이어야 하고, 예측 가능해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요새 정책을 보면 정책이 너무 바뀌고, 과거의 정책을 너무 쉽게 부정하고, 아무렇지 않게 소급 적용을 해서 개인이 느끼는 불확실성을 오히려 증가시킵니다. 그래서 개인들은 장기적인 조망을 갖고 해야만 가능한 과업들, 즉 결혼, 출산, 양육, 내 집 마련 등을 자꾸 뒤로 미루게 됩니다. 당장 내년에 어떻게 또 환경과 정책이 바뀔지 모르니까요. 청년층의 우울증은 정부에서 모두 치료할 수는 없겠지만, 정부가 그것을 조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환경의 탓으로 돌리며 개인의 의무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진 않겠죠. 우리 모두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사회 역시 우리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각 개인의 의견이 모여져서 형성되는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참고 문헌 : 벌거벗은 정신력(요한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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