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이 매우 크고 심각하고 무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문제를 다루다 보면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 문제가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간단한 해결책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인생은 문제의 발생과 해결의 연속입니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우리 삶에는 문제가 끊이지 않고, 우리는 끊임없이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반복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말 힘들고 피곤한 일이지요. 많은 심적 자원을 동원해야만 합니다.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다양한 옵션들에 대해서 고려하고, 각 옵션을 취했을 때의 결과에 대해서도 시뮬레이션을 해야 하니까요.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주로 전두엽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전두엽은 가장 세련된 형태의 인지기능을 수행하는 곳이고 그만큼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하며, 스트레스와 피로에도 취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곤하거나 술에 취했을 때나 스트레스를 많을 때 전두엽의 통제력이 저하되며 폭식을 하거나 말실수를 하거나 평소와 달리 사소한 것으로 화를 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깊이 생각할 때 전두엽을 사용합니다.
전두엽은 반응 속도는 조금 느릴지 모르지만 감정적 반응에 비해서 보다 이성적입니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으로 인해 촉발된 감정에 휩싸여 결정을 내리면 결정 속도는 빠를지 몰라도 가장 좋은 결정이 나올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무엇인가 결정을 내릴 때 즉각적으로 하지 말고 시간을 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빨리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합니다.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소모되는 심적 자원의 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싶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워서 그럴 수도 있지요. 혹은 얼른 결정을 내린 뒤 후련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결정을 통해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감정의 동요를 누그러뜨리고 싶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이 문제가 정말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면서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점심 식사 메뉴를 정한다거나, 주말에 맥주를 마시면서 볼 영화를 고르는 것은 충동적으로 결정 내린다고 해도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하진 않습니다. 물론 그런 결정이 반복되면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자극적인 컨텐츠에 노출되는 시간도 길어지긴 하겠습니다만 인생의 경로를 바꿀 정도의 중대한 결정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전공을 결정한다거나, 배우자를 선택한다거나, 집을 산다거나, 이직을 한다거나 하는 문제 앞에 우리는 온갖 변수들을 다 고려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 문제들이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깊이 생각하며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깨닫게 됩니다.
만약 지금 결정해야 할 문제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면 위의 과정을 거치며 이건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상대적으로 간단한 해결책으로도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늘 충동적으로 결정하다 보면 우리가 차분하게 생각을 하게 해주는 전두엽이 제대로 훈련과 학습 과정을 거칠 수 없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매번 어떻게 차분하게 생각을 하고 시간을 두고 결정을 내리겠느냐는 것이지요.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위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정의 속도가 조금씩 빨라집니다. 뇌는 분명히 학습하니까요. 아주 큰돈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이 매우 작은 돈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이런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어서 요소요소에서 어떤 부분은 숙고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결정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매우 신속해지는 것이지요. 외부에서 보기에는 매우 과감해 보일 것이고요.
우리는 서로 “뭘 그렇게 심각하게 구느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하게 뭔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그 사람은 스스로를 훈련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닥쳤을 때 조금 더 안정적인 상태에서 수월하게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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