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스포츠에서는 기본적으로 우리와 그들을 구별합니다. | 피아식별이 우선이 된 세상

RayShines 2024. 8.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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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의 본질은 어찌 보면 강력한 투쟁의식, 그리고 우리 팀과 상대팀을 식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우리와 그들을 구분합니다.

이것은 매우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어서 그 구분에 이렇다 할 기준이 없기도 합니다. 단순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우리와 그들이 구분되기도 하고, 안드로이드 폰을 쓰는 사람과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도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한 연구자가 이런 인간의 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했습니다. 피험자들을 상대로 점 40개가 그려진 종이를 0.5초 동안 보여주고 점이 몇 개인지 추정하게 한 뒤, ‘무작위로’ 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 다음 한쪽 그룹에는 실제 개수보다 적게 대답했다고 알려주고, 다른 쪽 그룹에는 실제 개수보다 많게 대답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각 피험자들에게 돈을 분배하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둘은 무작위로 나뉜 그룹이었기 때문에 어느 그룹에 속했는가와 무관하게 돈이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 피험자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 돈을 더 많이 배분했습니다. 그저 점을 몇 개라고 추정했느냐, 그것 말고는 공통점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집단보다 내집단을 편애했습니다.

 

무작위로 배정된 두 그룹인데도 이럴진데 고향이 같거나, 학교가 같거나 응원하는 팀이 같거나 하면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저 점을 세는 것에 비해서 같은 국가의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얼마나 큰 동질감을 느끼겠습니까?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얼마나 동질한지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말입니다.

 

 

 

게다가 인간이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할 때 쓰는 동질감을 느끼며 공감하는 범위는 정말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합니다.

국내 경기를 할 때 바로 옆 지역의 팀과 경기가 있으면 서로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고 하며 자기 팀을 응원합니다. 그런데 다른 국가와 경기가 있으면 어제까지는 욕을 했던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잘하라며 응원을 하고 격려를 합니다. 옆 지역의 에이스가 우리 지역으로 이적을 하면 어제까지는 욕을 했었지만 오늘부터는 우리 편이 되고, 그 선수가 이적해 온 팀을 대항으로 한 경기에서 잘 해내면 영웅 대접을 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대상이 누구냐가 아니라 그 대상이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선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입니다. 안에 있으면 거의 무조건적 옹호를 하고, 밖에 있으면 거의 반사적인 비난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견지에서 보면 지역을 연고로 하는 스포츠팀과 그 팬들이 보여주는 엄청난 동지의식과 투쟁의식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스포츠팀들의 마스코트가 대부분 동물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아주 오래전 우리의 조상들이 애니미즘적 세계관을 갖고 살아갈 때 각 부족에게는 토템, 혹은 수호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동물일 가능성도 꽤 있었겠죠. 늑대 부족, 소 부족, 곰 부족, 독수리 부족, 그것이 아마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시카고 불스와 멤피스 그리즐리스는 소와 곰을 숭배하는 부족의 현대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들은 수호동물이나 상징물, 토템을 중심으로 매우 공고하고 타이트한 공동체를 형성했을 것이고, 다른 부족과는 자원을 두고 경쟁하며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을 수도 있겠지요. 지금 스포츠 경기는 부족 간의 합법적인 수준에서의 경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응원하는 우리들은 그 부족의 구성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겠지요.

 

 

 

세상을 전쟁터로 보는 시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요.

전쟁이라는 것은 피아식별 본능의 극단으로 치닫는 장입니다. 거기서는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서 죽여야 하냐 그렇지 않아야 하냐가 결정이 됩니다. 다만 요즘 세상에서는 무슨 폰을 쓰느냐, 무슨 팀을 응원하느냐, 무슨 식단을 선호하느냐, 어떤 정치관을 가졌느냐 등 다양한 유니폼과 다양한 표지들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매우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피인지 아이인지를 구별하려고 하고, 내집단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그 사람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비난하고 폄하하고 악마화하려는 경향이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세상이 따사로운 곳이고 아직 살만하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을 무조건 전장으로 보는 것 역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스포츠는 좋은 오락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강력한 투쟁의식이 숨어 있기도 하고, 다시 또 그 이면에는 세상을 둘로 나누려는 우리의 본능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정말 세상엔 내 편이 아니면 적만 존재하는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볼 문제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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