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넘치는 사랑과 충분한 칭찬을 받고 자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관심과 애정, 칭찬과 승인은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 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자존감의 원천이 될 것임에 분명하죠. 이런 이유에서 학급에서 한 명도 빠짐없이 상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이들의 자존감이 정말 도움이 될까 하는 걱정도 되긴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단점을 지적하고 고치는 것 위주이지요.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택하고 있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넌 이게 틀렸어, 이걸 못해”라고 말하며 단점과 실수를 지적하고 그것을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인간을 사회에서 쓸모 있는 자원으로 훈련시키는 데 매우 효율적인 방법일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행동은 발달 초기 단계에서 싹을 잘라내 버린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은 우리나라의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한마디로 아주 잘 녹여낸 말입니다. 중간만 가라, 둥글둥글한 게 좋은 거다, 튀려고 하지 마라 등등의 말은 다시 말해서 남들과 다른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틀렸다고 지적받으면 바로 고치라는 명령입니다. 이 방식이 효율적일 것임은 분명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방식으로 직장에서 착착 일을 해내는 그런 인원을 양성해 내는 것에도 성공을 했던 것이 분명하고, 아마 그런 인력자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크게 발전한 것도 맞습니다.
이와 같은 획일화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해왔는지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강력한 규제와 다른 것을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문화는 개개인이 자신의 특출남이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조차 위험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막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개인의 능력은 매우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본인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지요. 개인의 단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수정하는 방식의 교육으로는 아마도 나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가 아닐까요. 우리는 항상 지적을 당하고, 왜 더 잘하지 못했어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기 때문에 난 부족한 존재라는 생각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소한 것을 칭찬하고, 모두가 상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아무리 사소한 것도 칭찬을 하고,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능력에 대해서 하나씩 상을 받기도 하고, 운동 경기에서도 1등을 가리는 것보다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트로피를 함께 드는 것이 더 옳고, 더 공정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 자신도 1등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극단적 사고방식보다는 이 편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각자의 자존감이 고양된다면 주눅 들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기 조차 어려워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누가 봐도 정말 억지로 만든 것 같은 이름의 상을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아이는 정말 저 상을 받는 것이 자랑스럽고, 저 상을 받은 것으로 인해 스스로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아이들도 자기가 받은 상이 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만든 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모든 아이들이 상장을 하나씩 들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자존감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예전에 했던 획일화의 다른 버전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존감을 고양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모두에게 똑같은 함량으로 기계적인 칭찬을 주입하는 것이고, 혹시 그것이 아이들에게 “이런 상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오히려 “그냥 상을 주려고 억지로 말도 안 되는 상을 만들어서 날 준거야”라는 생각에 이르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존감이 고양되기는커녕 자존심이 상할 일이지요.
인생에 있어서 성취는 중요한 것입니다. 상이라는 것은 성취에 대해서 주어지는 공식적 칭찬 중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무분별한 상, 상을 위한 상, 상의 인플레이션이 과연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내가 스스로 중요하고 잘하고 싶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의 결과에 대해서 칭찬과 승인을 받았을 때의 뿌듯함과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 그냥 얻어걸린 것으로 상을 받았을 때의 떨떠름함을 생각해 보면 금방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아마 알 것입니다. 아이들 자신이 정말 잘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 아이들은 정말 칭찬을 바라고 그것을 부모에게 보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별 관심도 없고 잘하고 싶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 칭찬을 하면 아이들 자신도 “이걸 칭찬받는 게 나에겐 별로 의미가 없는데”라는 표정을 짓지요. 그런 의미라면 상을 억지로 어른의 가치에 맞춰 만들어서 줄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잘하고 싶어 하는 것을 정말 잘했을 때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 상이 가치 있어지고 그래야 자존감이 고양되는 것 아닐까요. 잘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제대로 못 했을 때는 무분별하게 무조건적으로 “잘했어, 너무 멋지다”라는 칭찬보다는 따뜻한 격려, 그리고 계속 그것을 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게 맞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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