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 자매”를 보고 써보는 글입니다. 아래에는 심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희숙, 미연, 미옥, 세 자매입니다. 미연과 미옥은 돌림자가 같은데 희숙만 혼자 돌림자가 다르죠.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미연과 미옥은 친자매이지만, 희숙은 배다른 자매입니다. 이 세 자매의 아버지가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 낳은 딸입니다. 그리고 희숙과 어머니가 같은 진섭이라는 막내 남동생이 있습니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희숙과 진섭에게 폭력을 휘두릅니다. 미연과 미옥은 아버지가 희숙가 진섭을 때리고 있을 때 맨발로 도망쳐 나와 동네 슈퍼로 달아납니다. 거기에는 동네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버지를 말려야지 어째서 둘만 도망쳤느냐며 나무라고, 신고를 해달라는 미연에게 그러면 너희 아버지는 전과자에 쓰레기가 되라는 것이냐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빌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가정 폭력, 주취 폭력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이 정도였습니다. 아버지가 아내와 자녀를 때리는 것은 소유물에 대한 일종의 권리 주장으로 봤던 것 같고, 가장의 폭압에 대한 저항은 질서에 대한 항거로 치부됐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친의 폭력에 노출된 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자란 세 자매, 그리고 막내아들의 영혼에 남은 상흔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얼마나 그들을 파괴했는지가 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아버지의 폭력의 가장 피해자 중 하나였던 첫째 희숙은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의 자녀들이 보이는 전형적이 모습을 보여줍니다. ACOA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Adult Children of Alcoholics의 약자인데 이들은 매우 위축되어 있고, 비관적이며, 만성적인 우울감과 무가치감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숙 역시 그러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습니다. 정말 미안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스스로 느끼는 부적절함과 어색함, 그리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공허함을 덮어버리기 위한 사과입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미안하다는 듯한 그런 모습이지요. 만성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누구로부터도 적절한 보호와 사랑을 받지 못했던 탓인지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착취적인 남편의 언어폭력에 노출되면서도 어색한 웃음을 짓는 것 말고는 저항하지 못합니다. 또한 거절을 하지 못하고 자기주장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약속을 어긴 사람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길에서 만난 사이비 종교 신도들에게 끌려가기도 합니다.
희숙은 꽃집을 운영합니다. 자신의 삶은 남루하고 처량했지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연유에선지 사채를 쓴 뒤 가끔 희숙에게 들러 수금하듯이 돈을 받아가는 남편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꽃의 가시나 부러진 가지로 손이나 허벅지 안쪽에 자해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좋아하는 락커가 공연 도중 머리를 마이크로 때려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는 “근데 그거 잠깐 마음이 좀 편해지죠?”라고 묻습니다. 실제로 자해를 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자해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이들에게는 신체적 고통이 오히려 더 견디기 쉬운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희숙은 사람들 앞에서 늘 어색하게 웃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자해를 하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그녀에게 자해는 학대받으면서 자랐던 어린 시절의 연장선 상에 놓인 성인 자신에 대한 자기 징벌인 동시에, 신체적 통증이라는 탈출구이며, 생존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뿐인 자신의 딸이 “정말 착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며 울부짖는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둘째 미연은 겉으로는 잘 조율되고 통제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대학교수 남편과 넓은 아파트에서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삽니다. 교회에서는 매우 독실한 신자이고 성가대의 지휘자이기도 합니다. 그녀에게 종교는 단순히 삶의 코드가 아니라 그녀의 정체성 그 자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식사 기도를 거부하는 어린 딸에게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외도를 하는데 그 사실을 알고도 그녀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내연녀의 얼굴을 짓밟아 복수를 하기도 하지요. 남편이 집을 나가버리자 베개 두 개를 가지런히 쌓아 올린 뒤 얼굴을 묻고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지릅니다. 그녀는 삶을 통제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극의 절정에 그녀는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홉 살 때 내일 아침에 되면 아버지만 빼고 우리 식구들이 전부 죽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하며 오열합니다. 아버지만 빼고 가족들이 전부 죽어 천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늘 바른 행실을 하려고 노력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신실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아마도 아버지 없는 천국에 가고 싶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 딸과 아들을 끔찍하고 무자비하게 구타한 아버지는 지옥에 가야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이러니는 아버지 역시 자신의 생일에 목사님을 초대할 정도로 너무나 독실한 신자였다는 것입니다.
셋째 미옥은 알코올 중독자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극작가 같은데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미연의 손을 잡고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는 집에서 빠져나와 동네 슈퍼로 달아났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도망을 쳤는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중학생 아들을 둔 청과물 가게 사장과 재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을 핸드폰에 “돌+아이”라고 저장해 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아들의 뺨을 때리자 갑자기 격분하며 “아빠라고 자식을 때리면 되느냐”며 남편을 때립니다. 이 장면만 따로 잘려 나와 있는 클립을 보면 코믹한 장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 장면은 이들 세 자매의 아버지의 폭력성이 미옥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미옥은 술을 많이 마시고, 자신의 성정을 조절하지 못하며, 엄마가 되는 방법을 모르겠으니 알려달라고 미연을 채근하는 미성숙한 성인입니다.
세 자매는 아버지의 생일 때문에 한 자리에 모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막내 진섭이 나타나 아버지에게 오줌을 갈깁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 석자를 부르며 욕설을 하고 난동을 피우지요. 이 장면 뒤에 바로 위에서 말했던 미연이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희숙은 딸은 희숙이 암에 걸렸다고 소리 지르며 “아니 왜 어른들이 사과를 못하냐”고 힐난합니다. 이 장면 이후 아버지는 창문에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박아 자해를 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그가 뉘우치고 속죄하는 것으로 느껴진다기보다는 그저 상황을 종결하기 위한 일종의 재판장의 망치질로 보입니다.
그리고 세 자매는 오래전 같이 갔던 식당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식당은 폐업했습니다. 그리고 희숙은 부탁이 있다며 셋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그들 셋이 함께 나온 사진은 어른들의 강요로 셋이 노래를 부르며 어색한 춤을 추던 때 찍은 한 장뿐입니다. 이때도 그들의 아버지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만 두라며 소리를 질렀었습니다. 그들은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폭압에 저항하지 못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뻣뻣히 몸을 움직이는 상처받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그들의 영혼 중 일부는 과거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닫아버린 식당처럼 그들의 과거 역시 어느 즈음부터인가는 닫힐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찍은 사진처럼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겠지요.
영화의 마지막에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가 나옵니다.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라는 가사는 이율배반적으로 들립니다.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이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말처럼 말입니다.
모든 배우의 연기가 다 뛰어나지만 김선영 씨의 연기는 정말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인 이승원 씨가 김선영 씨의 남편이라고 하네요. 김선영 씨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알코올과 폭력이 누군가의 정신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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