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잘 커나가는 데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부모들이 어려움에 쳐했더라도 주변의 적절한 도움을 받고 문제를 이겨낸다면 아이들이 잘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하네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참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이것은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똑같을 것입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각자의 문제를 갖고 있고, 해결해야 할 각자의 과제를 두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어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부모일 테지요. 그리고 부모들이 어떤 문제에 놓여 있고, 그것에 따라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아이들도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태블릿, 랩탑, 성과 위주의 사회, 물질적 성취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만듭니다. 물론 과거에도 세상은 살기 어려운 곳이었음에 분명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해야 할 것들을 더 많아지는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금방 낙오될 것만 같은 초조가 우리를 엄습합니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뛰어놀지 못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골목이라는 것이 있고, 동네 친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모여서 구슬치기도 하고, 팽이치기도 하고, 말뚝박기도 하고, 얼음땡도 하고, 나이 먹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어떤 한 놀이가 유행할 때는 다들 그것을 하다가, 조금 질리면 자연스럽게 다른 놀이로 넘어갔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예전에 하던 놀이를 다시 하게 되고, 그럴 때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 재미가 없으니 룰을 바꾸어서 조금씩 개량해나가기도 했죠. 그래서 큰길 건너 있는 동네와는 같은 놀이라고 하더라도 규칙이 조금씩 다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뛰어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기울면 친구 중 한 명의 어머니가 큰 소리로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소리를 지르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다들 헤어지고 다음 날은 똑같은 날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그냥 당연한 일이었죠.
그런데 요새 아이들에게는 동네나 골목이라는 개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아파트에 커뮤니티 시설들도 있고 놀이터도 있지만 예전처럼 아이들이 모여서 뛰어노는 모습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줄넘기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가고, 축구를 배우기 위해 축구교실에 가지 아이들끼리 모여서 그냥 줄넘기를 하고 공을 차면서 뭔가를 배울 시간적, 공간적 여유는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지켜보는 환경에서만 놀 수 있는 것 같고, 집에 있을 때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면 아이들이 모여서 각자 디지털 디바이스를 들고 함께 게임을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어렵게 서로 모여도 같이 뛰어나 얼굴을 보고 노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을 보면서 노는 것이지요.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정말 세상이 달라졌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들은 아이들에게서 놀이가 박탈된 것이 아이들에게서 집중력을 빼앗고, 불안을 조절하는 능력도 앗아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이 충분히 운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뇌가 충분히 발달할 기회를 잃고, 그것이 아이들의 집중력이 더 성숙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며 배제당하기도 하고, 도전하기도 하고, 규칙에 좌절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실망과 불안을 경험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데 그런 기회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불안감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비약일 수도 있고, 억측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면서 “나 때는 안 그랬다”는 하는 또 다른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부모들은 부모들 대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자산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개를 단 듯이 오릅니다. 노동 소득은 현대 사회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돈을 버는 방식입니다. 설령 긴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나의 노동 소득으로 가서 닿을 수 있는 목표가 가시화되는 사회와 전혀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입니다. 내가 아이들과 제대로 놀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일해봤지 우리 가족들이 누울 집 한 채를 마련하기도 어렵다면 그때도 아무런 불안과 초조를 느끼지 않고, 해탈한 듯이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살 수 있게 될까요. 당장 직장 동료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있는데 집에 가서 여유롭고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실수를 보듬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는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아닌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 후자가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우울과 불안은 부모들의 정신적 자원을 갉아먹고, 감정적 여유가 고갈된 부모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 어렵습니다. 당연한 귀결이지요.
힘든 삶이라고 하더라도 도움을 받으면 이겨낼 수 있고, 그러면 우리의 아이들도 안정을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은 나아지고, 문제를 해결할 답은 얻지 못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힘은 얻을 수 있으며, 그렇게 우리가 마음을 짐을 조금 덜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나 가족, 누구든 우리가 감정적으로 기댈 수 있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많은 이들의 목표 중 하나가 가족들과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건강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지요. 하지만 어려운 시간이 닥쳤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 닥친 어려움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아이들도 부모의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문헌 :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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