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들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들이 많습니다. 그 애니메이션들에서 공룡들은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려집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애니메이션들을 보면 조금 슬퍼지기도 하지요.
랜드 비포 타임, 고녀석 만나겠다 같이 공룡들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들이 참 많지요.
공룡이라는 생명체는 참으로 신비롭지요. 이름에 공포에 쓰이는 공 恐, 즉 “두렵다”는 말이 들어있고, 영어로도 dinosaur의 dino는 “무섭다”는 뜻입니다. 공룡은 우리말로 무서운 용, 영어로는 무서운 도마뱀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만화 속의 공룡들, 특히 초식 공룡들은 무리를 이루어 살며, 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아끼고 돌보며 살아가는 선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반면 육식 공룡들은 그에 비해서는 조금 사납고, 무자비하며, 평화를 깨뜨리는 듯한 존재로 나오죠. 랜드 비포 타임 같은 만화에서는 초식 공룡들은 영어로 말하고, 육식 공룡들은 영어가 아니라 뭔가 웅얼거리는 듯한 말을 합니다. 야만인이라는 뜻은 영단어인 바바리안 barbarian 은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바- 바-”라는 소리를 냈다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비교적 문명화된 이들이 보기에 이들의 언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야만인이라는 뜻이 된 것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랜드 비포 타임에 타오는 육식 공룡들 역시 영어가 아닌 의성어에 가까운 소리들을 냅니다. 교화되고 계몽된듯한 초식 공룡들에 비해 육식 공룡들은 다소 야만적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만화를 보는 내내 했습니다.
공룡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상향을 찾는 것입니다.
너무 추워지는 세계, 혹은 화산 폭발이 일어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먹고 마실 것들이 충분하고 살기 좋은 정도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는 숨겨진 유토피아를 찾는 여정을 떠나는 주인공 공룡들이 등장하죠. 그게 아니면 식량이 부족해진 시대에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열매를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공룡들 사이에서는 어느 곳에 가면 그런 열매가 무한정 열리는 아주 큰 고목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합니다. 어떤 형태이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제는 세상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가 변화하여 서식지가 줄어들고, 식량이 줄어들고 있다, 세상의 종말이 오고 있다는 것이지요.
전 그래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공룡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재미있고 즐거우면서도 약간 슬픈 느낌이 납니다.
결국 어떤 이유에서인가 절멸한 종, 그 끝을 아는 제 입장에서는 그들의 그 해맑은 모습, 서로를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 우정과 사랑 같은 것들이 너무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지요. 이미 어른 치고도 나이가 많은 어른이 되어 버린 저의 눈에는 결과론적인 것만 보이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너희는 멸종했거든”하는 비아냥이 섞여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끝이 결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을 고쳐 먹습니다. 어차피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인데, 우리의 죽음이 결정되어 있다고 해서 현재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요. 그 작고 귀여운 공룡들이 아장아장 걸음으로 그 먼 거리를 걸어 유토피아에 도달하고 난 다음 날 운석이 떨어지든, 아니면 공룡들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들이 태어난 이후에야 아주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든지 그들이 그곳에 도착하고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가족들, 친구들과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면 결국 그들이 어떻게 되든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공룡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육식 공룡들에게 쫓기기도 하고, 추운 밤을 보내기도 하고, 물 대신 용암이 흐르는 강을 건너기도 하지만 어쨌든 서로를 믿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주 먼 길을 가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눈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모든 것이 끝나긴 하겠지만 즐거울 때는 웃고, 기쁠 때는 그 기쁨을 나누고, 슬플 때는 서로에게 기대어 울며 현재를 살아나갑니다. 우리는 어쨌든 현재를 살아가야만 합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예상할 수 없으니까요.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아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이 모든 것인 동시에 가장 큰 의미를 가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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