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중재자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 중재자 역할을 했던 수도자들

RayShines 2024. 6. 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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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수도자, 혹은 수도사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속세를 등진 채 살아가는 은자들이었죠. 그런데 이들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역 공동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수도자들은 수도사, 수도승, 수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들은 세상을 벗어나 수도원에 살며 일하고, 공부하고, 기도를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움베르코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 중세 수도원을 배경을 하는 소설이지요. 수도자들은 대략 300~900년 사이에 많이 활동했다고 합니다.

 

요새 현대인들도 너무 시끄럽고 복잡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템플 스테이를 하거나 노지에 캠핑을 하러 가죠.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에는 지금보다는 훨씬 덜 복잡하고, 변화의 속도도 훨씬 더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때 세상의 속도와 번잡함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이들이, 혹은 욕망을 내려놓은 이들이 있었나 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도원은 매우 깊은 산속에 있거나 아니면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에 있어서 사회로부터 물리적으로도 완전히 고립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수도 문화는 우리의 예상처럼 폐쇄적이지 않았다고 하며, 오히려 매우 개방적인 쪽에 가까웠고 지역사회와의 교류도 매우 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수도원은 상담 센터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싱크 탱크로서 작동하기도 했으며, 자선 단체, 부동산 개발사, 금융 센터, 교회, 축제 장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수도원이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교단으로부터 작은 선물부터 넓은 토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재정지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수도원이라는 제도 자체가 강력한 네트워크를 통해 통제되던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수도원이라는 제도 자체가 실험적인 것이었고, 그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실천 규칙은 수도원마다 각양각색이었고, 수도자의 종류도 많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고 자기 집에서 수도를 하는 수도자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각각의 수도원은 지역 사회의 요구 사항에 맞게 내부적인 규칙을 조절하며 외부와의 교류를 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역할이 바로 중재자, 협상가, 그리고 조언자였다고 합니다. 

 

현대인들도 뭔가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찾아가는 사람 중 하나가 속세를 떠나 수양을 하는 분들입니다. 대부분이 종교인들이지요. 그런데 이걸 조금 삐딱하게 보면 이상한 일로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나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이것이 성립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분리된 존재들이 그 사회 속에서 이해관계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보다 그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연마할 자유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으로부터 떠나 있어야 세상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그것이 수도자들에게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중립성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다루고 있는 사안과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 것이 맞겠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그래서 삼권분립이라는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겠고요. 그러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고, 더 원론적으로는 그게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1500년 전에도 누군가의 중립성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세상을 등지고 사는 수도자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이해관계의 그물은 더 얽히고 설켰을 것이고 예전보다 인적 네트워크를 더듬어 올라갈 수 있는 장치들은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해관계가 없는 관계를 찾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특히 한 명이 내리는 결정의 영향력이 넓게 미칠수록 더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과 결정을 내리는 사람에 대한 생각은 더 깊어져야 할 텐데 과연 우리가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회의가 드네요.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눈길을 돌리는 것에도 너무 바쁘니까요.

 

참고 문헌 : 집중력 설계자들(제이미 크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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