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무엇엔가 능숙해지는 것이라고 하지요. 즉 통달하는 것입니다.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높은 자존감을 가지는 것,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는 것은 일종의 의무가 되어서 이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존감과 관련된 책들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었던 것 같고, 지금도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삶을 꽤나 지배하고 있습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뭘 하라는 말은 참으로 많습니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취미를 갖고,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면서 자신에게 투자하고, 남들의 평가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가스라이팅 따위는 당하지 말고… 등등 아주 많은 지침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 모든 것을 따를 수만 있다면 자존감에 상처를 받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겠지요.
자존감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가 무엇엔가 능숙해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통달하는 것, 영어로는 mastery, 입니다. 예전에 어렸을 때 저는 어른들에게 뭔가를 “마스터해야 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마스터라는 단어의 뜻을 잘 모를 때에도 그 말이 뭔가를 아주 잘하게 되어야 한다, 뭔가를 안다고 하려면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 깊이 알아야 한다는 명령 같은 것이라는 것을 그때도 알 수 있었습니다. Mastery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숙달, 정통, 통달, 전문적 기능 정도로 해석됩니다. 우리가 그냥 느끼는 그 말의 느낌 그대로입니다.
뭔가를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하게 되는 것, 혹은 그것을 내 스스로 아주 잘한다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 왜 나의 자존감에 영향을 줄까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어합니다. 혹은 잘하게 되면 좋아하게 됩니다. 즉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같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것을 처음 배울 때는 잘 하지도 못하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레벨을 넘어서면 그것을 잘하게 되어서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먼저 좋아하게 되고 나서 연습을 통해서 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두 가지가 합치되면 그 사람은 그것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그것에만 빠져들 수 있는 것이지요. 흔히들 말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flow, 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무엇엔가 완전히 빠져들었을 때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할 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하시겠지만 최고의 성과를 냈을 때 나의 자존감은 증가합니다. 이 순환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존감을 형성하는 것들 중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내가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를 결정합니다. 아무리 그것이 작은 것이라도 하더라도 말입니다. 만화책을 보다 보면 많이 나오는 비장한 대사 중 하나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나의 능력이 보잘 것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이것은 할 수 있고, 그래서 난 이것에 나의 모든 것을 집중하겠다는 선언이자 스스로에 대한 명령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나 스스로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칸의 계단을 오르는 것이겠지요.
전 그래서 누구나 개인적으로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이 한 가지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라도 상관없겠지요. 타인과 사회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괜찮을 것입니다.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라도 상관없을 것이고, 그것으로 돈을 벌지 못해도 무관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할 때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하게 되어야 하고, 그 빈도가 높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그것에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 활동을 함으로써 설령 그 활동이 타인에게는 무용한 것일지 몰라도 나 자신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유용한 동시에 필요한 것입니다. 취미를 찾자는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찾자는 말이 더 필요한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깎아내리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나 자신이 나를 돌보는 것은 성인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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