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영화 카운슬러 The Counselor | 리들리 스캇 | 코맥 맥카시 | 후기 | 감상기 | 거장의 범작

RayShines 2024. 7.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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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맥카시의 소설을 리들리 스캇이 연출한 영화 “카운슬러(The Counselor)”를 매우 뒤늦게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거장의 범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꽤 인상적인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아래는 카운슬러의 IMDB 링크입니다.

https://www.imdb.com/title/tt2193215/?ref_=fn_al_tt_1

 

The Counselor (2013) ⭐ 5.4 | Action, Adventure, Crime

1h 57m | 18

www.imdb.com

 

 

영화는 2013년도에 나왔으니 벌써 11년이 넘었습니다. 원작은 코맥 맥카시의 소설이라고 합니다. 코맥 맥카시는 “더 로드(The Road)”,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의 원작 소설을 쓴 소설가입니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작품들은 모두 영화화되었네요. 코맥 맥카시의 소설은 매우 건조합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은 많지 않고 그냥 갑자기 주어지는 느낌이 많이 나지요. “더 로드”의 경우에도 주요 인물들이 갑자기 그냥 그 상황에 놓여졌고, 저항할 수 없는 힘,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에 따라 극이 진행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게 느껴지고,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는 혼란감이 듭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그런 긴장감이 다른 레벨로 올라가 버립니다. 한 인간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어떤 절대악의 현화처럼 느껴지는 “안톤 쉬거”라는 캐릭터가 가진 압도적인 힘으로 이 영화는 걸작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영화는 나올지 몰라도 안톤 쉬거에 필적하는 캐릭터가 또 다시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참고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음향만 있고 음악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스카에서 4개 부문을 수상했지요. 

 

이 카운슬러라는 영화는 코맥 맥카시의 원작에 리들리 스캇이라는 거장, 그리고 마이클 패스벤더, 브래드 핏, 하비에르 바르뎀, 카메론 디아즈, 페넬로페 크루즈 등 초호화 캐스팅 라인까지 가세했으니 매우 큰 기대를 모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포스터나 제목만 보면 서스펜스 스릴러 혹은 액션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에 그랬을텐데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IMDB에 따르면 제작비 2500만 달러에 전세계 수입이 7100만 달러라고 하네요.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 역시 상황이나 설정을 잘 제시하고 관객들을 이끌어주는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리고 영화의 씬들도 유기적으로 연계된다는 느낌보다는 분절분절 툭툭 던져지는 느낌입니다. 리들리 스캇 정도 되는 감독이 편집에 실패한 것은 아닐테고 의도적인 것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 그런데 감독판이 극장판보다 러닝타임이 20분이나 더 긴 것을 감안하면, 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극장 상영 횟수 압박 때문에 많이 잘라내고 영화관에 걸었나 싶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에 일단 영화 자체는 마구 스릴이 느껴지거나 흥미롭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좀 뜬금없네 하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전 이게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지 못한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영화에 나오는 대사들에 뭔가 의미와 지혜와 잠언과 온갖 경구들을 쑤셔 넣은 느낌이 많이 납니다. 영화에서는 이름도 알 수 없고 그냥 카운슬러라고 불리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만나러 간 보석상과의 씬에서는 유대인들의 신을 서양에서 훔쳐갔다는 대사가 길고 지루하고 장황하게 이어집니다. 뭔가 의미가 있어보이지만 평범한 저같은 관객은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습니다.

 

극중 라이너인 하비에르 바르뎀과 극중 말키나가 카메론 디아즈가 나누는 대화 중에 말키나는 “진실에는 온도가 없어(The truth has no temperature).”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의미를 압축해넣은 대사가 나오는 이 영화에서라면 평범한 대사이지만, 다른 영화였다면 펀치라인이 될만한 대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또 라이너와 말키나가 나누는 대사 중에 명대사가 하나 더 나옵니다. 말키나가 먼저 말을 하지요. “탐욕이 당신을 낭떠러지로 몰고 갔어, 안 그래?(Greed really takes you to the edge, doesn't it?)” 그랬더니 라이너가 답합니다. “욕망이 그런 게 아니야. 그게 욕망이지(That's not what greed does. That's what greed is.).”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뭔가 파악할 만한 전사라든가 배경이든가 그런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말키나에 대해서인데, 그녀가 바베이도스에서 왔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3살 때 그녀의 부모가 헬리콥터에서 내던져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극중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녀가 뭔가 범상치 않은 삶, 혹은 지옥같은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 외에 다른 인물들은 이런 단서조차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영화의 인물들은 결국 탐욕 Greed 때문에 파멸합니다. 욕망 때문에 궁지에 몰린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파른 절벽 위로 몰고 가는 것, 그 자체가 탐욕인 것처럼 말입니다.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이며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한 로라라는 인물 역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아니라 그릇된 욕망을 품은 주인공의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죽음에 간접적 원인이 되는 카운슬러라는 인물은 마지막까지 죽지는 않습니다. 그 이후에야 볼 것도 없이 지옥같은 삶을 살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카운슬러는 메마른 사막 같은 영화입니다. 윤기라든가 습기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영화 속의 폭력은 작정하고 일어나는 액션이라는 이벤트가 아니라, 분주한 일상 속에서 계획적으로 일어나는 프로그램 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저항할 수 없는 악의가 느껴집니다. 영화 상에서 일어나는 살인 중 두 건, 혹시 로라도 그랬다면 세 건, 에서 사용되는 도구가 철사인데 그것이 평소에는 적당히 유연해서 쉽게 은폐할 수 있지만 팽팽해지면 세상 그 무엇도 잘라낼 수 있는 인간의 악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스릴러나 액션을 기대하신다면 실망하시겠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답답한 느낌이 남는 적당한 중량감을 원하신다면 한 번 보실만한 영화입니다. 리들리 스캇은 리들리 스캇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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