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삶의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 중 하나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의 역할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업을 가지기 때문에 직장 내에서 역할이 생깁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가정을 꾸리기 때문에 가족 내에서의 역할이 생깁니다. 1인 가구라고 하더라도 내 역할은 있기 마련이고,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면 그 안에서의 내 역할은 더 분명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결혼을 한다면 배우자의 원가족에 대한 나의 역할도 생깁니다. 아이를 가지면 완전히 새로운 역할인 부모로서의 역할도 해내야만 합니다.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해야만 할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기능에는 반드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자원은 더 이상 명확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시간이라는 자원의 유한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물리적 한계에 대한 인정과 다름없는 말이니까요.
우리가 가지는 명확한 한계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무엇을 우선으로 둬야 하는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탈선하게 되어 있습니다. 명확한 순서 없이는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니 우리의 삶은 유지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입장의 정리가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각 개인은 저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다릅니다.
가족이 가장 중요한 사람도 있고, 돈이 최고라는 사람도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미와 스릴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있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재미를 포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종교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세속적 가치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종교적인 삶을 사는 척 위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릅니다.
가치관, 종교관, 경제관, 정치관, 세계관 등 우리는 관으로 끝나는 많은 단어들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갖고 있는 관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잘 이해하고 있고,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지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열린 태도를 갖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무엇이 중요함을 아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혐오를 느끼며,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고, 무엇을 위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나를 얼마나 잘 아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조차도 제가 제 자신을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겠지요.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하는 말이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나는 내가 잘 알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흔이 불혹이라는 옛말이 있지요. 이는 그 시기에 이르면 그런 가치가 자연스럽게 취득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즈음에는 그런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명령일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그렇게 기대수명이 길지 않았던 과거에도 얼마나 세상으로부터의 유혹이 많고, 스스로에 대한 의혹이 많았으면 불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조차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를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되는대로 내 삶을 꾸려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삶의 가치에 대해서는 정리와 선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러저러하니 이런 가치가 중요하다는 식의 논리적 귀결도 가능하겠습니다만, 인지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난 이게 중요한 것 같다고 한다면 그에 맞춰서 삶을 배열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에 논리적 설명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요. 특히 어떤 것이 좋고 싫고에 대해서 그럴 때가 많고, 윤리적, 도덕적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그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냥 그게 옳은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은 것이지요, 생각하기 보다는요.
내 삶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각자 찾아나가야 할 평생의 과업 같은 것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중요한 것처럼 다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중요하다고 하고 실제로는 함부로 다룬다면 그것은 결국 내 스스로 내 삶의 방향을 흐트러트리는 것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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