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중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공룡에 끌릴까요.
학급마다 공룡박사로 불리는 아이들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부모는 따라서 공룡에 대한 지식이 높아지기도 하지요. 물론 아이들의 관심사는 여러 종류입니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고, 로봇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고,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기계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공룡이라는 단어는 공포의 공, 용 dragon 의 용으로 구성됩니다. 영어로 dinosaur 중 dino는 terrible, 즉 무섭다는 뜻이고, saur는 lizard, 즉 도마뱀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와 우리말에 모두 “무섭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용이든 도마뱀이든 일단 공룡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섭다는 정서는 우리에게 매우 깊이 각인되는 감정 중 하나입니다.
아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농사를 짓기 전에는 사냥과 채집을 해서 삶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수렵 채집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한 활동입니다. 사냥은 말 그대로 나를 다치게 할 수 있는 대상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과정입니다.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하기는 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위험이 낮아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사냥감과 다투는 과정 중에 부상을 입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냥 과정 중에 넘어지거나 긁히거나 해서 감염이 될 가능성도 매우 높았을 것입니다. 채집은 사냥보다는 좀 덜 위험한 과정이었을지 모르나 역시 위험한 활동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채집을 하기 위해 정신과 시야를 다른 데 팔고 있는 사이 역시 우리처럼 굶주린 채로 사냥을 하고 있는 포식자의 목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니까요. 이 모든 과정은 우리 조상들의 뇌에 알람을 하나 달아두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 느껴지면 무조건 달아나라는 무조건적 명령이 내려지는 코드라고 해야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 공포, 오싹함 등이 느껴지면 그때는 채집이고 수렵이고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만약 거기서 살아남았다면 뭐가 중요해질까요? 같은 위험에 자기 자신을 또다시 내던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포, 두려움 같은 정서는 우리의 뇌에 매우 강력하게 각인되고, 그때 당시의 기억에 매우 두껍고 다채롭게 덧입혀지며 가중치를 부여합니다. 우리의 뇌는 강력한 감정으로 장식된 기억을 훨씬 더 오래 간직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포스러웠던 기억은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더러 있고, 비슷한 장소나 사건, 사물 등의 단서가 주어지면 그 즉시 다시 재생되며 우리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게 됩니다. 이것이 공포라는 감정의 진화적 가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대표적인 것이 인지적인 설명을 하는 것이지요.
잘 모를 때는 무섭지만 그 사건의 이치나, 그 대상의 생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나면 두려움이 조금 가실 때가 많습니다. 감염병이 그렇습니다. 잘 모를 때는 사회 구성원 전체를 크게 위축시키지만 전파 과정이나 소독 방법, 치료 방법들이 밝혀지며 설명이 가능해지면 두려움은 급속히 줄어듭니다.
뱀은 지구상의 대부분의 구역에 생존하는 한다고 합니다. 매우 추운 지방이나 고도가 매우 높은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뱀이 살고 있습니다. 모든 뱀이 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분명 몇몇 뱀은 매우 치명적인 동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어떤 뱀이 독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내기를 할 때 일단 저 뱀이 독이 있다고 생각하고 피하는 것이 생존에 훨씬 이득이었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독사가 아니라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다가 물렸는데 신경독을 갖고 있는 뱀이라면 그 비용은 너무나도 큽니다, 죽음으로 치러야 했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뱀은 일단 “무서운 것” 폴더에 넣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파충류에 대한 공포감 내지는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공포감이 구체화되었던 예 중 하나가 폴 매클레인 Paul Maclean 이 고안한 “삼위일체의 뇌”에 등장하는 “파충류의 뇌”입니다. 삼위일체의 뇌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뇌에 대한 서사적인 이해에 더 가깝습니다만, 어쨌든 매클레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어두운 동시에 본능적인 충동이 이 파충류의 뇌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이성적인 부분이 그 충동과 본능을 억누르는 족쇄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당대 최고의 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칼 세이건이 1977년에 출간한 <에덴의 용 The Dragons of Eden>이라는 책을 출간하며 우리를 추동질하는 파충류의 뇌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고 이것을 용 dragon 이라는 대상으로 시각화했습니다. 오랜 기간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파충류가 가지고 있는 구조가 우리의 뇌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아이디어는 다양한 문화권에 존재하는 파충류 형태의 신과 용이라는 형태로 현화되어 있는 공포, 혹은 경외의 대상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꽤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공룡을 본 인간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지만 공룡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인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의 종명인 호모 사피에스는 모르지만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은 아마도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공포의 대상이었던 파충류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값이 우리에게 매우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 공포의 대상에 대한 건조한 설명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그것을 흥미의 대상으로 치환하여 공포를 누그러뜨리고자 하는 프로세스의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저는 몇몇 공룡들이 정말 멋진 생명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성인이 된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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