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냉담하게 대하고는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다, 서로 마음 다 알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들었던 어른들의 말 중 하나가 “서로 마음을 다 알기 때문”에 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 다투는 사람들, 가족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필요 이상으로 고압적이고 간혹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가장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서로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마음속 깊이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표면적인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전 이 말이 정말 그런가 어린 시절부터 의심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의심을 넘어서서 저 말이 틀렸다고 확신하게 되기도 했고요.
형식에 매몰되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들을 고단하고 수고스러웠던 삶을 위로하며 그들의 넋을 기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제수를 마련하느라 무리한 지출을 하고, 제사 음식을 상 위에 어떤 순서로 배열하는지에만 사로 잡힌 나머지 제사의 진의를 놓치는 것은 옳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형식에만 집착하면 의미는 증발하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식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그 역시 부작용이 있습니다. 제의라는 것은 어느 정도 경건하고 신성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적절한 절도와 형식은 그 자체로 일상과의 차이를 부각시키게 되는 동시에 그로 인해 특별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식과 의미는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 같이 가야만 서로에게 더 시너지가 날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의 어떤 영역에서는 과도할 정도로 형식에 집착하는 반면, 어떤 부문에서는 무책임해 보일 정도로 형식을 폄하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형식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부모, 배우자, 자녀, 절친한 친구 등과 같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대합니다. 서로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칩니다. 서로가 서로를 웃음거리로 만들며 웃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여러 기회를 빌어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가끔은 선을 넘는 농담과 욕설을 좀 하더라도 서로가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장난으로 받아들이며 도덕과 윤리를 잠깐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건강한 퇴행입니다. 인간이 늘 긴장한 채로 살다 보면 고장이 날 것이 분명하니까요.
문제는 서로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를 멸시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서로에게 필요 이상으로 냉담하게 굴면서 겉으로는 “우리는 서로 마음을 다 안다, 그래서 다 괜찮다”고 말하며 서로에 대한 악의적 태도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폭력적 언행을 하고 나서는 “그래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자녀에게 적절한 한계를 둔 처벌 이상의 감정적 체벌을 하고 나서는 “사랑해서 그랬다”고 말하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쪽은 늘 가해하는 측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며 피해자에게 자신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으니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죠. 피해를 입은 측은 폭압에 의해 마지못해, 혹은 실제로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 사람에게 자신을 멸시하고 평가절하하고 함부로 대하기는 하지만 사실 그 사람의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억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우리는 정말 누군가의 마음을 완전히 속속들이 알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아무리 나에게 함부로 하고 나를 능멸해도 그 사람이 날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요? 전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라면 소중하고 중요하게 대하는 것이 더 옳겠지요. 가끔 서로 다투고, 사랑하는 자녀가 엇나갈까 걱정이 되어 나무랄 수는 있겠으나 애정과 관심과 사랑의 표현은 전혀 하지 않고, 늘 고압적이고 지배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관계를 오랫동안, 대부분의 경우 피해를 입는 측의 평생 동안, 유지해 놓고서는 어느 순간 “사실 난 널 사랑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니 이제는 우리 서로 따뜻하고 우호적인 형식을 가져가 보자”고 하면 누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제까지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함부로 대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서로 따뜻한 말을 하자고 하면요.
서로를 아껴야 하는 사람에게 늘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늘 좋은 말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노동이 될 것이므로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필요와 기분에 따라 상대방을 폄하하고 비난하고는 그것이 자신의 사랑의 표현이라며 상대를 기만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가장 중요한 형식은 서로를 향하는 말과 서로에 대한 행동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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