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말과 질문이 아이들의 사고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 생각에 매우 동의합니다.
옛말에 “애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고 하지요.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순식간에 복제해 내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사실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러합니다만 특히 미국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에 대해서 매우 강력하게 믿는 것 같습니다. 흔히들 이원론 dualism 이라고 하지요. 인간이 영혼과 육체라는 두 개의 구성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신념체계입니다. 이원론이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인간의 생과 사,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사고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종교적인 사고체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엄밀히 말하면 데카르트가 이원론을 주장하기 이전부터 종교는 있었으니, 종교가 이원론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이원론이 어떤 식으로 종교에 영향을 미칠까요? 바로 내세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세 유럽은 그보다 더 심할 수 없을 정도로 계급화된 사회였죠. 귀족들과 농노들의 삶은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농노들의 삶은 너무나 열악했고 하루하루 생존해 나가는 것 말고는 삶의 목적을 갖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삶을 좋아하겠습니까, 아무리 일을 해도 내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면 누가 일하겠다는 동기를 가지겠습니까. 그 동기를 준 것이 바로 내세에 대한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 육체가 죽음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나의 영혼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며 나의 고단한 육체가 이승에서 평생에 걸쳐 이룩해 낸 노동의 결과 나의 영혼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영화를 누릴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노예들에게 지배계급과 성직자 계급이 부여한 서사였습니다. 이 서사는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는 지금도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미국은 특히 이와 같은 믿음이 매우 일반적이어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나면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의 말을 듣고 행동을 지켜보며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성인들은 죽음,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이들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들도 어린 시절 그렇게 듣고 자랐으니까요. 이와 대조적으로 마다가스카르의 베조족은 어떤 망자의 영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곁에 머무르면서 불행과 불운을 일으킨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나라에도 저승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며 이승의 존재들에게 불행과 저주를 내리는 영들에 대한 설화가 매우 많습니다.
죽음과 내세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많은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아이들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일단 어른들, 대부분 부모들에게 물어보게 되지요. 그런데 많은 경우 어른들은 매우 모호하거나 편파적인 대답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들은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론을 내리기까지 필요한 배경지식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의 지적 기량이 없으면 결론을 알려준다고 해도 소화해 내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래서 어른들은 매우 유치한 답변을 하거나 회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는 한쪽으로 매우 편향된 답변을 내놓게 되지요. 특히 절대자, 죽음, 성 등과 같이 철학, 종교, 윤리, 생물학 등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입장 정리가 필요한 주제에 대해서 그러합니다.
아이들이 이런 주제를 궁금해할 때 이렇게 답을 해야 한다는 정해진 답안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자 부모에게서 무신론자 아이들이 태어나는 경향이 높고, 종교를 가진 부모의 자녀가 종교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삶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질문에 대해 부모들이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제공한다는 뜻이겠지요. 절대자의 존재를 확고하게 믿고 있고 매주 교회에 가고 저녁 식사 전 일용할 양식을 주신 신에 대한 기도를 하면서 아이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 성인이 된 이후 스스로 결정하게 해주고 싶어서 인지적으로는 무신론적 설명을 하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반대로 극단적인 무신론자이며 생명에 대해 기계적인 설명을 선호하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절대자의 존재에 대해서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결국 부모가 무엇을 믿고 말하느냐에 따라 큰 그림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성인으로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삶의 매우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내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고, 내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아이들과 논의하고 이야기할 때 그저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논리와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첨예한 주제라고 한다면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측의 논리에 대해서도 미리 숙고해 보고 그것에 대해서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어떤 지평을 열어주느냐에 따라 아이가 더 넓고 열린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 아마 그것이 아이가 삶에 있어 가끔 주어지는 행복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해 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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