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가벼운 것일까요, 무거운 것일까요.
밀렌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이 있지요.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인공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었지요. 영화의 제목은 “프라하의 봄”입니다. 어렸을 때는 이 소설 제목을 보고는 무슨 제목이 저러냐 생각을 했었는데, 나이가 조금 들어서 다시 읽으니 예전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다들 많이들 알고 계실 테고 또 앞으로 읽으실 분들도 계실 테니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존재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존재란 사물의 존재라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 영어로는 being,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이고, 어느 정도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됩니다. 인본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각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이고, 누구나 가늠할 수 없는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의 경제적 효용 가치와는 무관한, 숭고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무엇으로도 침해당할 수 없고, 침해당해서도 안 된다고 믿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없으며 전체의 일부나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의 소우주이니 그 자체로 하나의 전체인데, 우리가 어떤 전체의 일부로 귀속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이렇게 보면 존재는 너무나 무거운 것입니다. 우주이니 무겁죠.
그런데 동시에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 자신이 장구하고 거대한 계획에 속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완전히 분리되고 독립된 개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나 목표의 부재와 같은 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난 이런 이유로 세상에 와서,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하며 저기로 가고 있으며, 종국적으로는 이런 결말을 맞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쓰는 방식에 있어서 가장 유효한 전략 중 하나가 나와 내 삶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내가 시공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나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주체는 신일수도, 종교일 수도, 국가일 수도, 계급일 수도, 그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그 주체가 거대할수록, 그리고 그것의 권위가 높을수록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의 정당성은 커지고 단단해지고 확고해질 것입니다. 이 논리가 더욱 전개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없다면, 혹은 나에게 역할을 부여할 주체가 해체된다면 그때 나의 존재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나의 존재라는 것은 다른 거대한 전체가 있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일진대 그렇다면 그에 비해 나의 존재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닌가, 나의 존재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속도로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는 대단히 무겁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개인이 아무리 저항해도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세차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처럼 가벼운 것이기도 하지요. 삶이란 참으로 모순적인 것입니다.
내가 나를 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구속이 되기도 합니다.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은 가끔은 너무나 버겁기 때문이지요.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우리 자체보다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소소한 것들에서 기쁨과 희망을 느끼는 것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이것은 삶 전체, 세상 전체, 그리고 어떤 이념이나 종교나 국가보다 가벼울지는 모르나 한 개인으로 보자면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고 무겁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생각보다 가볍고 생각보다 무거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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