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시간의 양면성 | 시간의 자애로움과 시간의 무자비함

RayShines 2025. 2. 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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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극단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없이 자애롭기도 하지만, 한없이 무자비하기도 하지요.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표현합니다. 마치 강처럼 말입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궁극적으로는 바다에서 만나는 모든 강들처럼, 시간도 태초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지나 미래의 어느 즈음으로 흘러간다고들 우린 생각합니다. 혹자는 과거, 현재, 미래는 선형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언제나 존재하는 것은 현재뿐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언뜻 쉽사리 이해되지 않으며, 시계열이 태생적으로 갖게 되는 인과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만 존재한다는 개념보다는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을 훨씬 더 직관적으로 잘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정말 다루기가 어렵죠. 그것이 무엇이라고 정의 내리기조차 불가능해 보이니깐요. 네이버 국어사전의 첫 번째 의미를 보면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라고 되어 있고, 중간 즈음에는 “물리 : 지구의 자전 주기를 재서 얻은 단위. 이론적으로 고전 물리학에서는 공간에서 독립한 변수 곧 절대 시간으로 다루어졌으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서는 양자가 물리적 사건을 매개로 하여 사차원의 시공 세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다루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마지막 항목에는 “철학 :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로 무한히 연속되는 것. 곧 사물의 현상이나 운동, 발전의 계기성과 지속성을 규정하는 객관적인 존재 형식을 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 정의이든, 물리학적 정의이든, 철학적 정의이든 다 수긍이 가지만 시간이 가지는 성질 자체를 말해주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 시간은 한없이 자애롭습니다.

모든 흠결을 가려주고, 어떤 잘못이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엄마와 함께 덮던 담요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삭제해 주고 소거해 주고 마멸시켜 버립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기쁨도 바래고, 슬픔도 잦아들며, 영광도 잊혀지고, 수치도 흐려집니다. 시간은 깊은 상처도 치유해 주어 인간이 한걸음 또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결국 시간은 가고,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힘든 길에 막 발을 내딛을 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지만 말입니다. 이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그리고 이 길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앞서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서 뒤돌아 보면 겁먹었던 것에 비해서 잘 이겨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요. 시간은 우리가 한 실수를 되짚어 보고 만회할 수 있게 해 주고, 우리의 결점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어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우리 영혼의 따뜻한 이불이 되어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은 정말 무자비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갑니다.

우리가 그저 무의미하게 스마트폰의 스크린을 스크롤하며 보내는 1시간과 내 자신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게 해주는 책을 읽는 1시간은 똑같은 1시간입니다.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는 결국 철저히 나 자신에게 달려 있지만 우리는 시간이 무한정 있는 자원이라는 생각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낭비합니다.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소모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을 고민하고 끌탕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목적 없이 하루하루 보냈던 시간이 축적되어 몇 년이 된 뒤 후회해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자애로운 시선을 던지던 시간은 그 자리에 없고 날카로운 낫을 든 시간의 하수인이 우리가 충분히 갖고 있다고 착각했던 시간을 싹둑싹둑 잘라내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 많은 시간을 허비해 버렸던 것이 바로 나로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한 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물론 지구의 공전이라는 물리적 근거가 있긴 하지만 음력과 양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떤 시각을 기점으로 해가 바뀐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올해가 되면 하기로 했던 것을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내년이 되면 새로운 내가 되어 올해 하기로 했던 것을 하고 있을까요. 1년이든, 10년이든 하루가 켜켜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인데, 작년의 마지막 날과 올해의 첫째 날이 다른 날일까요, 두 날의 조성이 뭐가 그렇게 다를까요.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나가는 것이 우리의 곁에 시간의 자애로움은 조금이나마 끌어들이고, 시간의 무자비함을 조금이나마 밀쳐내는 길일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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