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골상학이라는 학문이 있었습니다. 골상학자들은 두개골의 모양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주장 했습니다.
골상학은 18세기 중후반에 프란츠 갈이 주창했다고 알려집니다.
그 논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근육이 더 발달해서 커지듯, 우리 뇌 중 특정 생각이나 행동을 담당하는 부위는 자주 쓰면 더 커져서 겉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골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머리를 더 많이 쓸 테니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지능을 담당하는 영역이 더 커졌을 것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것 같지만 그때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골상학을 믿었습니다.
프란츠 갈의 골상학을 그대로 전승한 학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체사레 롬브로소입니다.
그는 환자 108명의 미술 작품을 수집해 <천재와 광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롬브로스는 또한 범죄인류학의 창안자이기도 했는데, 그는 머리와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범죄자를 가려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강간범에 대해 눈은 번들대고, 체격은 연약하며, 부푼 입술과 눈꺼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캘리퍼로 두개골의 수치를 재고 기록했으며 “선청선 범죄자들은 본질적으로 인간 속에 살고 있는 유인원”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47년 소실인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보면 골상학과 관련된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마에 … 지적인 기관들은 충분히 크지만 자비심의 온화한 표시가 나타나야 할 곳은 현저하게 작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는 양심의 기능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진 정수리 돌출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에게는 다행히도 이 돌출부가 충분히 도드라져 있었기 때문에 사실 그의 머리 윗부분이 눈에 띄게 넓었다.”

위의 그림에서 보면 자비심(Benevolence)과 관련된 부분은 13번 부위이며, 양심(Conscientiousness)은 16번, 감탄(Wonder)은 18번, 이상주의(Ideality)는 19번 등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줄줄 외우는 것을 보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골상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고, 작자인 샬롯 브론테 역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걸 보면 당시 골상학이 꽤나 유행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제 골상학을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관상은 과학, 관상은 통계학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어떤 경우 누군가의 생김새가 그 사람의 성격이나 품성과 연관성을 보인다는 것은 누군가 어느 정도 주관적 경험적 근거를 갖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대한 반례도 얼마든지 존재하지요. 어떤 동물을 닮은 사람은 성격이 어떻다더라고 하지만, 그 동물을 닮은 사람 중에 그 동물과 닮은 사람들의 전형적 성격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이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니 얼굴이나 두개골의 생김을 가지고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으로 그 사람을 섣불리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배웁니다.
그것을 편견, 선입견이라고 부르며, 만약 그것을 근거로 어떤 개인에게 불이익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것을 차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강아지를 닮은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높은 보수를 받는다거나, 고양이를 닮았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한다거나 하면 그것은 누구나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늘 신경질을 내고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 그리고 늘 활짝 웃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유머러스하게 넘기려고 하는 사람들은 거기 맞춰 중립적인 표정 자체가 변하기도 하니 그 사람의 인상이 무조건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를 그 사람의 생김새로 평가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최대한 그 마음을 억눌려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좋은 외모는 희소한 자원임에 분명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것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 자체를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스펙트럼의 반대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해 차별과 멸시를 당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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