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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은 사실일까요? | 몰입 | 칙센트미하이

RayShines 2025. 3.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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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뭐든 잘하게 되려면 10,000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었죠. 이제는 이 법칙이 사실이 아니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저서인 <아웃라이어>에서 소개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는 <아웃라이어>에서 비틀즈가 전세계적 그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비틀즈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1만 시간에 가까운 공연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어떤 것을 잘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특히 뭔가에 숙달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1만 시간이 필요한 건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학자들도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것에 1만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선 하루 8시간씩 1250일, 주말을 제외하고 대략 1년에 250일을 투자한다면 5년이 걸리고, 주말, 휴일 할 것 없이 1년 365일 투자한다고 하면 3년 5개월가량이 걸립니다. 실로 엄청난 시간입니다. 사실 이 정도를 투자할 수 있다고 하면 무엇이든 잘 하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어떤 것 한 가지 이 정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는 의지와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다른 무엇이라고 해내긴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논의로 돌아와서 정말 1만 시간이 어떤 기능의 발전에 특이점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증거도 많이 쌓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더 중요할까요?

 

 

 

반대 증거로 많이 제시되는 이론은 헝가리계 미국인 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가 소개한 몰입, 영어로 flow라는 개념입니다.

그냥 단순히 일률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뭔가에 완전히 빠져들어 집중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마이클 조던이 혀를 내밀고 플레이를 할 때 우리는 그가 “존 안에 들어가 있다(in the zone)”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몰입의 예일 것입니다. 동양적 표현으로는 물아일체, 혹은 혼연일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신과 대상을 잇는 기술의 세 가지 요소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물이 흐르듯 매끄럽게, 그 어떤 이음매도 느껴지지 않고, 요새 표현으로는 심리스 seamless 로 진행되는 경지에 이른 것이겠지요. 마이클 조던도 물론 1만 시간 넘게 연습을 했을 것이겠지만, 1만 시간을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의 수준에 이를 수는 없을 가능성이 꽤 높음을 생각해 보면 1만 시간이 어떤 “특이점”이라고 무조건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다면 산술적으로 많은 시간 투여 없이 매우 깊이 집중하는 시간만 있으면 무엇인가에 통달할 수 있느냐, 그것도 사실 아닌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레지던트, 우리말로 전공의 과정을 거치며 훈련을 받습니다. 전공의 시절에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견뎌내야 합니다. 당연히 잠잘 시간이 없습니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서 전공의 수련 계획을 세운 사람인 윌리엄 스튜어트 헬스테드라는 외과 의사가 코카인 중독자였기 때문입니다. 코카인을 사용하면 늘 각성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늘 그 상태였던 헬스테드는 자기 기준에 맞춰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미국의 전공의들도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일을 했는데, 몽롱한 와중에 벌어진 사고로 환자가 사망하게 되고, 환자의 보호자이자 변호사였던 사람이 이를 문제 삼아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을 주장하여 실제로 그것을 이뤄냅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환자의 사망률이 감소했을까요? 놀랍게도 유의한 수준의 사망률 감소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공의 시절의 고강도 노동은 일이기도 한 동시에 훈련입니다. 힘들긴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며 어쩌면 워라밸을 추구하며 훈련받아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에 매우 빠른 기간 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시쳇말로 “사람 구실”을 할 수준에 빠르게 이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방식이 반인권적인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침으로써 많은 전공의들이 금세 궤도에 오르고 그 결과 진료 능력이 향상됩니다. 그래서 이 과정이 사라지자 ‘전공의의 과노동 및 수면 부족으로 인한 실수’가 사망률을 높이는 효과와 ‘전공의의 신속한 역량 강화’가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가 서로 상쇄되어 환자의 사망률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전공의를 혹독하게 훈련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경우 능력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하루 1시간씩 360일보다 하루 8시간씩 45일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인도적 방법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개개인의 내적 동기가 충분할 때, 집중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몰입하며 연습하는 것이겠으나, 현실에서 그것은 참으로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원할 때 뭔가 몰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냥 기계적으로 연습하는 가운데 몰입이 찾아올 가능성이 더 크기도 합니다. 마치 작가들에게 찾아오는 뮤즈처럼, 몰입도 마법적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것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반드시 1만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시간이 질로 변화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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