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출간된 앵거스 디튼과 앤 케이스의 책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를 보면 알코올, 약물, 그리고 자살로 인한 죽음이 증가하고 있으며, 저자들은 이를 “절망사 Deaths of Despair”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약물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펜타닐로 인한 사망자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중국발 펜타닐 제조 원료 수입 자체를 차단하기 위해 우방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를 물리기도 했었죠. 펜타닐이 정말 관세의 이유인지는 트럼프의 속내는 알 수 없겠으나, 대외적으로는 펜타닐을 이유로 들어도 다들 수긍할 정도로 펜타닐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미국에서 비 히스패닉계 백인들의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자살, 약물 과용, 그리고 알코올 관련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증가하고 있음에 주목하며 이 세 가지 이유로 사망 원인에 “절망사”라는 비극적인 명칭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서 소득 양극화, 사회 안전망의 부재 등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망사가 증가하고 있는 인구가 주로 학사 학위를 가지지 못한 비 히스패닉계 백인들에게서 증가하고 있음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학사 학위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인구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가 충분한 교육일지는 알 수 없겠으나, 상대적으로 교육의 양에서 열위에 있는 이들은 경제적 변화, 즉 육체노동보다는 보다 정교한 기술이나 정신노동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산업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소득 상위층의 소득은 가파르게 증가할 때 이들의 소득은 거의 제자리걸음에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택 소유를 어렵고 하고, 결혼을 어렵게 만들었는데 이 두 가지를 삶의 족쇄라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이 두 가지를 인생의 안정화 요소로 보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매우 자유로울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불안정한 삶을 살 수도 있음을 예상케 합니다.
아시겠지만 부모의 소득이 낮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자녀들 중 분명히 유능한 이들이 태어납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겠지요.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뒤를 돌아보지 않을 가능성이 꽤 높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경쟁력이 높지 않은 사회에서 유능한 이들이 떠난다는 것은 이들 개인에게는 성공 신화이지만, 그 사회로 보자면 인재를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들이 보는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됨으로써 소득 하위층의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해 줄 인재들을 서서히 그리고 영원히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경제 성장이 더뎌지며 분배할 수 있는 파이 자체가 작아짐에 따라 누구에게 분배할 것이냐가 매우 중요한 동시에 첨예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분배란 결국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누가 많이 가져가면 누군가는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어렵게 상위층에 편입된 이들에게 드는 생각은 첫 번째로는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다리 걷어차기가 발생합니다. 누구에게나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존이 가장 중요하니 이를 무조건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꼭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요.
우리나라도 미국 못지않게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양극화 지수 중 하나인 지니 계수는 좋아지고 있다는 기사도 있긴 하지만, 체감되는 양극화는 그와는 좀 다르지요. 특히 부동산 불패 신화의 나라인 우리나라에서는 국평 아파트 한 채가 50~60억에 이르기도 하니 박탈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망사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진 않은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은 세계적 수준이며 약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알코올 문제는 크게 나빠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약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으니 알코올 중독이 제자리라고 해서 좋은 일만은 아니겠지요. 우리나라도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고 계층 분리는 심화되고 계층 사다리가 갈수록 더 많이 치워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우려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며, 어린아이들의 마약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절망사 그래프가 치솟는 것이 아닌지 하는 두려움이 드는 것이지요. 대책과 제도가 필요할 텐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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