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라는 소설을 보면 마치 주인공 부부에게 태어난 아이가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 혹은 공생 관계였던 네안데르탈의 후손인 것처럼 그려집니다.
아래 부분에는 소설 <다섯째 아이>를 읽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도리스 레싱의 소설 <다섯째 아이 The Fifth Child>의 주인공 부부인 데이빗과 해리엇 로바트 - 로버트 Robert 가 아니라 Lovatt 입니다 - 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또래의 남녀들과는 달리 성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고, 조용하고 보수적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아주 많이, 여섯, 여덟, 혹은 열 명 정도 낳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가 이런 삶을 원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로바트 부부는 교외에 방이 아주 많은, 큰 집을 삽니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아이들에게 방을 하나씩 줘서 쓰게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말입니다. 그리고 2~3년 터울로 아이를 낳기 시작합니다. 첫째인 루크, 둘째인 헬렌, 셋째인 제인, 넷째인 폴을 낳을 때까지 이들은 힘들지만 매우 행복했습니다. 명절이면 그들의 저택에 일가친척들이 다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이것이 바로 진정 인간이 원하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만끽합니다. 그런데 악몽은 해리엇이 다섯째 아이를 가지면서 시작됩니다.
다섯째 아이는 여느 아이와 다릅니다. 너무 이른 시기에, 너무 강한 태동을 느낀 해리엇은 뭔가 잘못 됐다고 느끼고, 서서히 그 아이에 대한 반감과 적의, 그리고 더 나아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해리엇은 이러다가는 뱃속의 아기 때문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합니다. 그녀는 네 명의 아이를 모두 집에서 낳았는데, 이번에는 병원에서 낳겠다고 고집을 부리기까지 합니다. 뭔가 예전과는 다른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형, 누나들은 다들 7파운드(3.15kg)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반면, 다섯째 아이인 벤은 11파운드(4.95kg)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벤은 외모도 사뭇 다릅니다.
“ … 두툼한 어깨에다 구부정한 모습이었다. 아기의 이마는 눈썹에서부터 정수리 쪽으로 경사져 있었다… 손은 두툼했고 손바닥에는 근육이 보였다.”
현생 인류는 이마가 수직으로 서 있습니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은 이마가 뒤로 누워 있습니다. 도리스 레싱은 벤이 호모 사피엔스보다는 네안데르탈의 속성을 갖고 태어난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미친 듯이 젖병을 빨아대는 벤을 보며 해리엇은 말합니다.
“네안데르탈인 아기야.”
벤은 형제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말은 늦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혀 읽지 못하며, TV나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서사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동물을 괴롭히고, 혹은 죽이기도 하며, 바로 위의 형인 폴의 목을 조르려다가 들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공격적이고 비사회적이어서 도저히 가족들과 살아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로바트 일가 사람들은 벤을 병원, 혹은 수용소로 보내기로 하고 실제로 보냅니다. 그러나 해리엇은 거기서 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집으로 데려옵니다. 여기서 두 번째 비극이 시작됩니다. 벤은 살렸으나 그로 인해 가족은 완전히 해체됩니다. 해리엇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텅 빈 큰 집은 벤의 불량 청소년 친구들이 채웁니다.
지금 지구상에 사는 인간들의 DNA 중 1~4%, 혹은 5%가 네안데르탈의 DNA라는 추정치가 있습니다.
DNA야 우리와 침팬지도 99% 정도는 같다고 하니 우리가 네안데르탈의 DNA를 그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DNA가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를 네안데르탈로 둔갑시킬 정도로 강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부분이 있고, 도리스 레싱의 생각처럼 우리 중 매우 일부는 네안데르탈, 혹은 외계인, 혹은 도깨비의 후손이라서 소설 속의 벤처럼 평생 자신과 같은 종족을 찾아다닐지도 모른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상상에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이 소설에서 벤은 순수한 악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영화 <악의 씨>나 <오멘>에 등장할 것 같은 그런 류의 사탄의 아이 같은 느낌이 아니라 순수한 본능에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압도적 에너지, 모터싸이클 같은 말초적이고 강렬한 자극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자신의 무리에 대해 느끼는 충성심과 그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한 경악에 가까운 공포,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게는 굴종하고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해 군림하고자 하는 태도 등을 보입니다. 계산적이거나 정교하지 못하며 결정적으로 지능이 썩 뛰어나지 않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나 반사회성 인격장애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벤은 프로이트의 말을 빌자면 이드(id)에 가까운 존재겠지요.
이 소설에는 몇몇 역설과 아이러니가 등장합니다.
성적 문란과 자유로운 삶은 일축하며 자신의 삶이 옳다고 여기는 로바트 부부의 생각은 그 반대 진영에서 보기에는 거의 망상에 가까울 정도로 공고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정도로 확신하고 있던 그 삶이 결국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가족, 가정, 공동체를 완전히 와해시킵니다.
그 중심에는 해리엇이 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는 닥터 덴마가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선의를 행한 것이 세상에 괴물을 풀어놓는 결과를 낳는다는 끔찍한 역설이 주제입니다. <다섯째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다른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벤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벤을 희생시킬 수 없었던 그녀는 벤을 구조하지만, 결국 그 모성애가 다른 아이들의 삶을 완전히 파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아이 중 한 명이 아프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다른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적절히 받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하며, 심한 경우에는 방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OO는 아프잖아”라는 말을 듣고 자라며 희생이 당연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저도 어릴 때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줄 알았습니다. 누구나 그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네 아이를 기르는 로바트 부부는 해리엇의 어머니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1980년대의 영국에서도 아이를 기를 때는 외할머니의 조력 없이는 안 됐던 것이겠지요. 로바트 부부처럼 아이를 다섯 명씩 낳는 것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비난할 수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벤 같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가끔 느끼는 무력감은 천사 같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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