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보면 18년이나 갇혀 있었던 남자, 마네트 박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는 당시의 기억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완전히 고립되면 정신이 황폐화된다고 합니다.
마네트는 북탑 105호에 18년이나 감금됩니다.
<두 도시 이야기>는 루이 16세 치하를 배경으로 합니다. 소설 속에서 루이 16세는 구속 영장을 발부하여 누구든 아무런 제한 없이 무기한 감옥에 가두어 둘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마네트 박사는 모종의 이유 때문에 “북탑 105호”에 18년이나 갇혀 있다가 풀려납니다. 그런데 그는 갇혀 있던 동안의 기억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그냥 그 시기가 송두리째 그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미국에도 유명한 감옥인 알카트라즈가 있죠. 알카트라즈에는 이른바 “구멍(hol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독방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구멍은 가로, 세로 3m 정도의 크기에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는 구조였다고 합니다. 구멍에 갇힌 죄수들은 이틀만 지나도 벽에 머리를 찧어댔다고 하며, 거기에 들어가면 누가 무슨 행동을 할지 아무도 몰랐다고 합니다. 로버트 루크라는 죄수는 구멍에 29일 동안이나 갇혀 있었는데, 그 안에서 그는 과거 했던 여행이나 연날리기를 상상하면서 버텼다고 합니다. 또 다른 죄수는 빛의 얼룩을 TV라고 상상하면서 그것을 말 그대로 ‘시청’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서 감각 자극을 완전히 박탈하면 인간의 뇌는 굉장한 혼란에 빠집니다.
사실 뇌는 아무것도 없다, 혹은 무, 영어로는 블랭크 blank 를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백색 공포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간은 커다란 원 앞에 서면 공포를 느끼는데 이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원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중심점을 찾아서 찍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집트인들이 사막 한가운데 피라미드를 세운 이유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텅 빈 공포를 이겨냈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텅 비어 있는 하얀 벽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공포감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빈 벽에 낙서를 하고, 어른들은 액자를 건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룰 수 없습니다.
무념무상의 경지는 실질적으로는 도달하기 불가능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라는 것은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 화학적 반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아시겠지만 전기 신호나 화학반응은 멈춰져 있을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오가는 반응의 속도가 같아서 변화가 없어 보이는 이른바 “동적 평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사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또한 우리의 뇌는 “없음”이나 “하지 않음”을 개념화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우리의 뇌는 우리가 실제로 그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그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설정한 목표가 제대로 성취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히 그 목표가 정신적이거나 추상적인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자동화 과정이 지속적으로 체크를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우리의 뇌는 엄청난 혼란감을 겪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처리하고 새로운 정보를 수입하고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체크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우리의 뇌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지면 공황에 빠집니다. 그래서 환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환청을 듣기도 하며, 기능이 멈추며 기록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두 도시 이야기>의 인물 마네트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갇혀 있던 장소는 기억을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사람, 시간, 장소 중 장소를 기억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도 먼 과거의 일을 회상할 때 보면 많은 경우 “누구와 언제”는 희미하더라도 “어디”에 갔었는지는 비교적 확실히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뇌에 “장소세포”라는 세포가 있어서 특정한 장소에 가거나, 그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반응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혼자 갇혀 있었을 것이므로 분명 “누구”에 대한 기억은 없는 것이 당연하고, 18년이라는 세월 역시 그의 뇌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지만 “북탑 105호”라는 장소는 그의 뇌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새는 너무 자극과 소음이 많아서 뇌를 일부러 쉬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 역시 필요합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알림, 메시지, 불필요한 정보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것 역시 우리의 정신 건강에 필요한 것이니까요.
'조금 깊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격 Character 와 성격 Personality 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384) | 2025.03.18 |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가진 자의 운명 (500) | 2025.03.13 |
하루 몇 보나, 얼마나 빠르게 걸어야 할까요? | 걷기의 효과 (668) | 2025.03.08 |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 네안데르탈인 아이 (473) | 2025.03.04 |
음주 경험 비율은 고소득층이 높지만, 음주량은 저소득층이 더 높습니다. | 알코올 폐해 역설 (499) | 2025.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