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들 합니다. 하루에 얼마나 걷는 게 좋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걷는 게 좋을까요?
많은 현대인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생활합니다. 활동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더 좋지 않은 것은 직장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적인 삶, 특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 좋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와 증거가 이미 확립되어 있어서 더 이상 강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앉아있는 것은 새로운 흡연(Stting has become the new smoking).”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요. 이 말은 스티븐 일라디라는 신경과학자가 한 말입니다. 일라디는 우울증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사람이기도 한데,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실내에서만 생활하고, 그로 인해 수면 사이클이 교란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고립되는 우리네의 삶이 우울증 발생률을 높인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21년 서울 시민이 하루에 걷는 걸음수는 4898보 정도라고 합니다.
하루에 5000보가 채 되지 않지요. 일부러 걷는 걸음수가 아닌 그냥 생활 속에서 걷는 걸음수임을 생각하면 정말 걷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추정치이긴 하겠지만 수렵, 채집민이던 우리의 조상들은 하루에 15~20Km를 걷거나 뛰었다고 합니다. 시속 5km라고 한다면 하루에 3~4시간은 걸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보다 더 건강히 오래 살았느냐?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워낙 감염과 사고가 많았기 때문에 평균 수명은 우리보다 짧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혈압, 당뇨, 비만 등 성인병은 아마 적었겠지요. 칼로리 섭취는 적고, 칼로리 소비는 많았을 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인간의 대략 50%는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고, 그 이유는 대부분 감염이었다고들 합니다. 여담으로 당시의 감염은 대부분 상한 음식이나 상처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걷는 건 우리에게 어떤 이점을 줄까요?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걷는 걸음수가 1000보씩 늘어날 때마다 고혈압, 당뇨, 비만 등의 성인병 발생 위험이 10%씩 감소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루 10000보를 걸으면 그럴 가능성이 0이 되느냐? 그건 아니었습니다. 걸음수에 따라 성인병 발생 위험이 감소하는 효과는 8000~10000보 정도에 이르면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성인병 예방을 위해서라면 하루에 8000~10000보 정도를 걸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걷기가 우울증 발생 위험을 낮춰주는 효과는 10000보를 넘어서서도 지속되었습니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최대한 많이 걷는 것이 좋겠지요. 그리고 한 시간에 5.6km(4마일)을 걸을 수 있는 80세는 90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85%인데 반해, 한 시간에 1.6km(1마일) 밖에 못 걸으면 90세까지 생존하기 못하고 사망할 확률이 90%였습니다.
또한 걷기는 뇌혈류를 증가시킵니다.
걷기의 장점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발에는 압력 센서가 있다고들 합니다. 이 압력 센서가 작동하면 심장은 “아 뇌로 더 많은 혈액을 보내자!”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뇌로 향하는 혈류량이 10~15% 증가합니다. 그리고 뇌로 가는 혈류의 증가 효과가 최고치에 이르는 걷는 속도는 분당 120보일 때라고 합니다. 따라서 1초에 두 걸음을 걷는 속도로 걷는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매우 가벼운 수준의 유산소 운동, 요새 유행하는 말로 치면 최대심박수의 60~70% 정도를 유지하는 존 2(Zone 2) 운동이 되는 동시에 뇌로 가는 혈류도 늘릴 수 있습니다. 뇌로 가는 혈류가 늘어나면 무엇이 좋을까요?
우리 뇌에는 해마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해마는 우리가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을 단기 기억의 형태로 머금고 있는 부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장기 기억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그전에 대부분 기억들이 잠시 지나쳐가는 간이역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억은 의식으로 들어오지조차 못하거나,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휘발되어 버립니다. 이런 기억들은 해마에 제대로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기억들이며 우리에게 유의미한 기억이 아니라 그저 무의미한 정보, 혹은 소음으로 끝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해마는 중년 시기가 지나면 그 부피가 매년 1~2%씩 줄어듭니다. 그리고 해마가 위축되어 나타나는 결과 중 하나가 인지기능저하, 그리고 치매, 즉 알츠하이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해마의 부피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데, 해마의 크기를 유지 혹은 증가시켜 주는 좋은 수단이 바로 유산소 운동입니다. 건강한 노인이라고 하더라도 해마의 크기가 매년 1.5%,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 매년 4%씩 해마 부피가 줄어드는데, 3개월 간 걷거나 조깅을 한 노인의 경우 해마의 크기와 뇌 혈류량이 증가했습니다. 매주 3회, 1년 간 산책을 한 경우 해마 용량이 2%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루에 8000보 정도를 걸을 수 있다면 좋습니다.
그리고 걷기의 효과를 조금 더 올리고 싶다면 세월아 네월아 하며 천천히 걷지 말고 분당 120보, 즉 초당 2보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그렇게 42분을 걷는다면 대략 5000보를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3000보를 채워 넣어서 하루 8000보를 걷는다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데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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