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남의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렇게 하면 지금 자신의 삶이 별로인 것에 대해 기분이 좀 나아지기 때문일까요?
우리의 삶은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냥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 우리의 의지는 전혀 없었다고 봐야겠지요. 민주국가에서 태어난 것은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으나, 경제적 양극화가 너무 심한 시기에 태어난 것은 썩 운이 좋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는 과거에 비해서 진보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조건들은 그저 그렇게 되어있는 것이, 혹은 되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삶에는 필연적으로 일방적인 부분, 그리고 수동적인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거대한 세상과 광대한 시대 속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그저 주어진 것을 수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환경과 운명과 미래를 바꿔나가기 위해, 혹은 거기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더 좋은 체격 조건을 가져보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더 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원하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들여 연습을 합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개인의 삶이 크게 바뀌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매우 크게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새는 먹방 컨텐츠들이 인기가 많고 많이, 잘,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큰돈을 벌기도 합니다. 많이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재능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사회, 경제, 문화적 조건이 거기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음식물이 부족한 시대나 국가에 태어났다면 그것은 재능이 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늘 배고팠을지도 모르니까요. 결국 한 개인의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시대적 흐름도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를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시대와 지역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유사한 조건이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노력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따라서 우리가 처한 조건이 아무리 변화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저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주변에 보면 늘 다른 사람이나 상황의 탓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조건 한 두 개만 더 갖춰져 있었더라면 엄청난 성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자신의 불행이 누군가의 방해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방해만 없었더라면 자신은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모든 계획을 세워놨었는데 누군가 그 계획에 차질을 일으켜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그가 생각하는 정의란 자신을 “사소하게” 방해한 그 사람에게 그 방해가 없었더라면 자신이 이루었을 성취와 음의 방향으로 동량의 처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의 탓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누군가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실수조차 전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놓친 - 실제로 훼방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룰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성공을 너무나도 과대평가하며, 그것을 야기한 타인의 사소한 실수도 매우 극단적으로 중대한 것으로 부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분노합니다. 아주 과하게 분노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모습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 혹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일단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주어져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여러 조건들은 내 삶의 모습에 기여한 변수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동일 지역, 동일 시대에서 사는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서 위의 변수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용인되겠지요. 그리고 나서 무엇의 기여도가 가장 클지를 고려해 본다면 아마 자신이 쌓아왔던 결정들의 총합이 1등일 것입니다. 물론 학대, 방임, 빈곤 등 너무나 큰 부정적 기여 인자가 있었다면 다른 문제이겠으나, 이런 상황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결국 나의 삶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나의 삶에 99% 기여했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변수 중 나의 기여도가 가장 컸으리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10%, 부모가 9%, 형제가 8% 뭐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단순히 수치화할 순 없겠지만 말입니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은 부당한 나의 설명하는 아주 편리하고 간단한 방법이며,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묘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반복하면 결국 지금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좌지우지되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며, 내가 나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내 스스로 삭제해 버리는 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 탓만 하다 보면 마음은 편하게 해줄지언정 내 삶은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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