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에 대한 권리가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침해 당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찌보면 무작위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중간 중간 우리의 의도와 결정이 개입되긴 하지만 중대한 사건들이라고 해서 항상 어떤 의도가 끼어들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연이 일어나는 경우가 꽤 많고 우리는 그것의 발생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그것에 대응하거나, 혹은 그것의 결과를 송두리째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된 것, 어떤 한 사람을 만나 함께 삶을 살아나가기로 결정한 것, 그리고 어떤 지역에 살기로 결정한 것 등은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대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고 질문을 받을 때 명확하게 대답을 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중대한 일인데 아무런 이유 없이 이루어졌을리는 만무할텐데 말입니다. 위의 사항들이 중대한 것은 우리의 삶에 매우 광범위하며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영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임팩트가 매우 강하죠. 쉽게 말해서 삶에 매우 깊이 침투하는 종류의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즉 중대한 것은 그 사건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지 우리가 그 사건 발생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아주 예전에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때 결혼의 영향력이 작았던 것은 아니니까요. 그때도 결혼은 인륜지대사였고 지금도 인륜지대사입니다. 차이는 현대 사회에서는 결혼이라는 것을 할지 말지, 한다면 누구와 할지에 대해 개인의 결정 권한이 더 커졌다는 정도겠지요.
다시 말해 어떤 중대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외력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연히 발생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이 그저 우연으로 인해 흘러간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우리의 결정이라는 요소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러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를 실현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바로 무작위 사건 사이를 연결하는 인과관계의 이야기를 쓰는 우리의 능력입니다. 아무리 무관해보이는 사건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럴싸한 이야기로 묶어 놓으면 그럴싸 해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개인적 서사를 창조해내는 데 매우 공을 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저작물이 그러하듯이 그 저작권은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우리 자신에게 귀속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짜낸 개인적 서사를 누군가가 폄하하거나, 부정하거나, 더 나아가 수정하려고 하면 그것을 매우 무례한 침해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혹여 누군가 나의 서사를 오해하지 않게 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두기도 합니다. SNS에 게시물을 올릴 때에도 사진 하나만 올리는 것보다는 전후 관계의 서사적 흐름을 맞추기 위해 글을 적기도 하고 해쉬태그를 달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 개인적인 서사를 타인이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나에게 내 스스로 나에게 부여한 서사가 내가 설정한 방식 그대로 타인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이유가 아마 여기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쓴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가에게 작품이 마치 자신의 자식 같은 것처럼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 역시 그러합니다. 그냥 겉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누군가가 나의 인생 서사를 함부로 해석하거나 부정한다면 누구나 화가 날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촘촘하게 쌓아둔 내러티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주 높다랗게 쌓아 올려진 탑 같은 것입니다. 쉽게 무너지진 않겠지만 쉽게 부서질까 두렵기도 한 그런 탑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을 때 한 번 정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내 인생에 대해서 그렇게 말한다면 난 어떤 생각이 들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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