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믿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사실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놓이면 나의 신념을 지키기 그리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예전에 한 연예인의 학력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우리나라 전체에 소란 아닌 소란이 난 일이었는데 당시 그 연예인이 학력을 날조한 것이라고 믿은 사람들이 꽤나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말았을 문제들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매우 빠르게 확산됩니다. 예전 같으면 길 건너까지 가기도 어려웠을 이야기가 이제는 바다도 건너고 산도 건넙니다. 얼마 걸리지도 않고요.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사실이든 허위이든 상관없습니다.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메커니즘은 컨텐츠의 진위를 가리지 않으니까요. 리트윗을 하거나 공유를 할 때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꼼꼼하게 따져본 뒤 터치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일단 퍼 나르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다시 되돌아가서 “내가 정말 진실을 확산시킬 것일까”하면서 자기반성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물론 저도 그런 반성을 하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고요.
예를 들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보죠.
수학적 명제는 옳고 그름이 명확한 것이라 적당한 예시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UFO나 지구평면설 같은 것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아서 굳이 수학적 예시를 들어봤습니다. 1 더하기 1이 3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100명 정도 있는 것은 사실 지구적으로 봤을 때 큰 문제가 안 됩니다. 그저 산수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 하면서 넘어가면 될 일이지요. 그런데 만약 고립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100명 있는데 그중에 99명이 1 더하기 1은 3이라고 믿게 됐다고 해보죠. 그리고 아직 1 더하기 1은 2라고 믿는 마지막 사람이 나라고 한다면, 난 언제까지 그 믿음을 확고하게 고수할 수 있을까요?
정확히 언제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누구나 한계가 있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아마 주변 사람 100명 중 10명까지는 대부분 버티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취약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니 곧 20명이 될 수 있습니다. 의심이 많던 사람들이 조금 더 자신의 생각을 포기합니다. 남들의 시선이 더 중요한 사람들도 곧 포기합니다. 나의 가족들과 다투기 싫은 사람들도 몇몇 더 생각을 바꿉니다. 그렇게 해서 전체의 50% 이상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믿는다면 저라도 약간 흔들릴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디어가 성공하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좋은 생각이 항상 세상을 휩쓰는 것이 아닙니다. 잘 팔리는 이야기가 세상을 휩쓰는 것이지요.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그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그냥 사실이 됩니다. 내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내 주변에서 그것이 전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나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척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의 숫자가 절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 혹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혹은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사람들 등 온갖 안 좋은 라벨이 붙인 채로 분류될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내 생각을 조금 바꾸는 편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각이 그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면 나에 대한 평가와 내 평판 역시 순식간에 퍼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안전하니까요.
우리는 진실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흔히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진실이라고 믿느냐, 더 나아가 많은 이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 같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남들이 그렇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 편이 안전하기 때문이겠지요.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건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면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겠지요. 한 발짝 더 생각해 보면 어떤 생각이 쉽게 퍼져나갔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는 생각 역시도 그러할지 모릅니다. 따라서 무한한 확산의 시대에 사는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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