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치 않게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라는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제목 그대로 모든 것을 잃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아래 링크는 “올 이즈 로스트”의 IMDB 링크입니다.
https://www.imdb.com/title/tt2017038/?ref_=fn_all_ttl_1
All Is Lost (2013) ⭐ 6.9 | Action, Adventure, Drama
1h 46m | 12
www.imdb.com
“올 이즈 로스트”의 주인공은 로버트 레드포드입니다. 감독은 “마진 콜”, “어 모스트 바이올런트 이어”, “트리플 프론티어”, 그리고 최신작으로는 “크레이븐 더 헌터”를 연출한 J.C. 챈더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독백이 시작됩니다. 이 독백은 2시간에 가까운 영화에 나오는 거의 유일한 인간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 시나리오 상으로는 ‘Our Man’이라고 불리우는 가상의 인물은 누군가에게 사과의 말을 읖조립니다.
“미안해… 이제 와서 이러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정말 미안해 (…) 난 진실해지기 위해, 강인해지기 위해, 관대해지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옳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정말로 노력했어.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
모든 게 다 사라졌어(All is lost), 내 영혼과 육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I’m sorry… I know that means little at this point, but I am. I tried, I think you would all agree that I tried. To be true, to be strong, to be kind, to love, to be right. But I wasn’t. And I know you knew this. In each of your ways. And I am sorry. All is lost here... Except for soul and body... that is, what’s left of them... and a half-day’s ration.”
주인공은 인도양을 항해하던 중 어떤 배에선가 떨어진 컨테이너 박스와 충돌하며 보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립니다. 설상가상으로 태풍까지 만나게 되며 돗대가 부러지고 결국 보트를 버리고 구명보트로 옮겨탑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합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내레이션은 주인공의 편지 내용인 것으로 보이므로 대사라고 보기가 거의 어렵고,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중 주인공의 입에서 나오는 유일한 대사는 식수에 바닷물이 섞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FXXX!!!”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뿐입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고작 32페이지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많은 조난 영화나 해양 영화들처럼 “올 이즈 로스트”를 보면 바다와 파도, 바람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늘 없는 광활한 공간으로 쏟아지는 작열하는 태양과 그것이 물러난 뒤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대기의 무자비함에 대해서도 새삼 되짚어보게 되지요.
주인공의 시선에서는 사방 어디를 보아도 끝없는 바다 뿐입니다. 위에 언급된 편지의 내용을 보면 주인공에게 가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인도양 한 가운데서 항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가 반지를 끼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혼 반지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런 상황에 가족에게 편지를 쓴다면 분명히 한 명, 한 명 이름을 언급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주인공인 ‘Our Man’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허공에 대고 지르는 소리처럼 주인없는 편지를 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를 봐도 주인공의 삶이나 개인사,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세상과 아무런 연결이 없어 보이는 주인공은 바다에 속수무책으로 내던져진 작은 구명보트와 거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냥 부유한 채 해류에 따라 흘러가는 구명보트처럼 주인공은 마치 닻을 잃고 돛은 부러진 배처럼, 그를 지탱해주는 그 어떤 기둥도 없고, 그의 방향을 잡아줄 그 어떤 이정표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것만 같이 보입니다.
대사 한 마디 없는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끝없이 닥치는 위기의 순간마다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고 망설임없이 실행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삶에 대한 태도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살아가는 의미와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Our Man은,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끝까지 해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결연합니다. 위에서 쓴 편지의 마지막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난 끝까지 싸웠어. 그게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
그리고 언제나 너희들이 더 잘 되길 바라왔어 난. 보고 싶을 거야. 미안해."
“I fought ‘til the end, I’m not sure what that is worth, but know that I did.
I have always hoped for more for you all... I will miss you. I’m sorry.”
‘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자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 위해 그는 그렇게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를 보니 사소한 것을 하다가도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며 포기해버리는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난 저 순간에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올 이즈 로스트”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깐느 영화제에서 9분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하네요. 7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역 없이 역할을 소화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헌신에 대한 존경일 수도 있겠고,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평범한 영웅들에 대한 찬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늘 신나거나 재밌거나 즐겁진 않죠. 사실 대부분의 일상은 지루하고, 너저분하고, 초라하고, 남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진실한 이들, 이 시대의 our men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 모두의 행복과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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