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불확실성과 슈퍼 히어로 무비

RayShines 2025. 6.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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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시들해진 것 같지만,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끝없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세상이 너무나 불확실해지며 우리가 보다 확실한 것에 끌리게 되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은 그렇게 급격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은 인류 전체의 역사를 두고 보자면 매년 벌어지진 않습니다. 어떤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인데, 그전까지 인간들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맞이하는 것에서 일종의 편안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껴지고,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더라도, 급격한 변화가 나의 삶을 좋게 만들어 줄 가능성만큼이나 더 나쁘게 만들 가능성 역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그냥 현상유지를 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겠죠. 어제 했던 것을 오늘 그대로 하면 미래는 바뀌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일도 오늘 얻었던 것과 같은 결과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신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던 때에는 어떤 사건, 문화, 이념, 체제가 퍼져나가는 속도에 분명한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그렇지 않죠.

 

 

 

이제 세상은 거의 동기화된 수준의 속도로 통신합니다.

특히 비슷한 연령대의 전 세계 인구가 유사한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가 한참 지나서 우리나라에 개봉하는 게 아니니까요. 이것은 빠른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가 꾸준히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산발적, 동시다발적으로 선호와 비선호가 발생하고 그것이 SNS를 통해 하나의 트렌드를 구성하는 데 물리적 제약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그대로 불확실성을 낳습니다. 내일 뭐가 어떻게 인기를 얻고, 어떤 세상이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불확실성은 불안으로 연결됩니다. 불안해지니 우리는 어디엔가 기대고 싶습니다. 그게 종교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일 수도 있고, 술이나 마약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어디에선가 위로를 얻고, 그게 무엇이든 빨리 결론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유행이지만 피커레스크라는 장르가 있지요. 선악이 불분명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입니다. 심지어 주인공조차도 선한 인물인지, 악한 인물인지 헷갈립니다.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상황에 강력하게 지배를 받아 선행이든 악행이든 반응적으로 행하는 인물들을 보며,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을 더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당연히 권선징악, 해피엔딩은 이루어지지 않고 열린 결말이 흔하며, 이것은 확실성 없이 부유된 채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를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줍니다. 사실 삶은 피커레스크에 더 가깝죠.

 

 

 

그런 와중에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뉘고, 결국 선이 악에게 승리를 거두며 세상과 사람들을 구원하는 슈퍼 히어로 무비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우리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려 줍니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세상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슈퍼 히어로들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어찌 보면 종교와 거의 동일한 메커니즘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초월적 대상의 존재는 우리가 우리의 고통스러운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니까요. 또한 내가 속한 팀, 내가 응원하는 팀이 종국에는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과 실제 승리는 내가 옳은 곳에 속해있다는 안도감을 줄 뿐 아니라, 강력한 소속감, 그리고 팀 구성원들과의 결속감을 줍니다. 이 느낌은 불확실성의 바다에 떠있는 우리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있는 옆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혼자라면 버티지 못했을 험난한 세상을 함께 나아갈 연대가 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든든함을 느끼게 하니까요.

 

세상은 외로운 곳이고, 삶은 힘든 것입니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데도 우리는 꿋꿋하게 오늘을 살아나갑니다. 그것이 마블의 히어로들 때문이든, 아니면 오늘 저녁에 있을 오랜 친구와의 약속 때문이든, 따듯한 가족들의 품 때문이든지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는 각자의 위대함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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