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너무나 빨리 돌아갑니다. 그래서 더 느린 활동이 필요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에 세상은 이제 정말 하나입니다.
차가 거의 없이 모든 것이 세상에 동시에 알려지고, 모든 호재와 악재와 시장에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유행이 지구를 반 바퀴 도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습니다. 인터넷은 세상을 하나로 연결했고, 그것은 전달에 필요한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삭제했으므로 최신성, 동시성, 즉각성이 세상의 기본적 성격이 됐습니다. 이제 뭔가 늦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성실, 유해함, 더 나아가 악, 부도덕처럼 느껴지는 세상인 것이지요. “요즘 시대에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라는 말을 쉽게 하게 되니까요.
그 와중에 우리의 뇌는 활활 타오르고 있고,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잔뜩 오버클락한 CPU에서 발생한 열 때문에 뇌는 익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이 정도로 많고 빠른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었을 테지만, 그런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억지로 자신의 역량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고 우리의 뇌에는 반드시 휴식이 필요할 텐데 우리는 잠을 줄여 가면서까지 새로운 정보를 뇌에 꾸역꾸역 밀어 넣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입니다.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봐 눈을 뜨자마자 주식 창을 열어보게 되고, 하루 종일 울리는 푸쉬 알람 때문에 내 삶에도, 내 가족에게도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일상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시간, 자원, 뇌, 그리고 우리 자신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느린 활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이 속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관성적으로 그냥 하던 것을 하게 될 것이 뻔하니까요. 하루 종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1분에도 몇 번씩 빈 화면을 바라보게 되고, 밥을 먹으면서도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고, 화장실이야 말로 핸드폰을 보는 최적의 장소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의식적으로 안 하지 않으면 안 할 수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뇌에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사실 많은 정보들이 불필요합니다. 소음에 가깝습니다.
삶에서 소음을 제거하고자 하는 적극적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그래도 많은 소음이 신호를 압도하며 정말 중요한 신호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조차 없습니다. 느린 활동을 하는 방법이 반드시 거창한 무엇인가일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 챙김, 명상 같은 것들을 통하지 않아도 삶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많습니다. 물론 명상을 해도 매우 좋은 것은 분명합니다.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느린 템포의 활동 중 하나가 휴대전화 없이 하는 산책입니다.
녹지를 걷는다면 훨씬 더 좋다고들 합니다.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공원이라면 아주 좋은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저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생각이 흐르는 대로 두면서 자신의 페이스로 걷는 것은 뇌가 쉬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녹색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내 눈으로 바라보며 걷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증거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렇게 작은 화면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며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그랜드 캐년과 같은 압도적 장관이 아니더라도 자연의 경외감은 어디에나 있으며, 나 자신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이탈한 부속이 아니라 더 큰 무엇엔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우리가 일상에서 시달리는 불안을 떨쳐내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오랜 친구와 우정을 유지하는 것,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아이를 길러내는 것, 장편 소설을 읽는 것, 느린 음악을 듣는 것 등은 모두 느린 활동에 속합니다.
당장의 성과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활동이 우리에게는 분명히 필요한 것이지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삶의 모든 요소가 열을 맞추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삶에는 분명히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쫓긴다는 것은 생존에 급급함을 의미합니다. 속도에 쫓기고 있을 때 우리는 나 자신을 보기보다는 나와 같이 달리는 옆 사람을 보기 바쁩니다. 속도를 늦추고 나의 발걸음을 천천히 내려다볼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충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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