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쉽다면 누가 그것을 하지 않을까요?

RayShines 2025. 5. 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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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니 자신을 알라, 니 자신이 되어라, 니 마음을 따라가라 등등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위해 살라는 조언들은 무수히 많지만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현자들은 누구나 비슷한 말을 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이 위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낸 뒤, 그것을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도 듣다 보니 이제 그것이 너무 당연해져서 오히려 어떤 때는 오히려 그 반대로 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지요. 너무 흔한 말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는 하지만, 실제로 내가 하는 생각이나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천천히 시간을 갖고 사색해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답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말로는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행동, 생각, 감정에 기인합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자율주행 자동차의 오토파일럿처럼 우리가 결정하거나 개입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흘러갑니다. 그중 어떤 것들은 좋은 습관, 즉 우리가 루틴이라고 많이들 부르는 것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나쁜 습관으로 굳어지기도 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비관적이거나 필요 이상으로 낙관적인 생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자극적인 음식이나 술이 당기는 것, 급박한 상황이 되면 지금까지 해왔던 결정과 행동을 답습하게 되는 것 등이 모두 그 예에 해당합니다. 그저 지금까지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오토파일럿에 알고리듬으로 인스톨되어 굳어진 우리의 감정, 생각, 행동은 켜켜이 쌓이고 “이것이 나답다”는 착각을 일으키며 이렇게 하는 것이 온당하다, 더 나아가 이렇게 하는 것이 편안하다는 안도감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안도감을 떨쳐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불확실한 이득보다 확정적 해악을 선택합니다. 인간의 결정과 행동이 이런 식으로 물이 많이 흘러 깊이 파인 수로로 더 많은 물이 흐르듯이,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 관성으로 인해 다음 결정도 같은 결정인 것을 보아왔던 현자들은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남들의 행동은 눈에 쉽게 보이고, 고쳐야 할 것도 쉽게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은 내 눈에 잘 안 보이고, 고쳐야 할 것은 의식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어떤 책의 제목처럼 나의 생각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삶에 치이는 우리에게 그런 시간이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입니다.

 

 

 

성인이 되면 우리에게는 많은 역할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원해서 주어지는 역할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구를 억눌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충분한 시간이 있고, 그래서 내 자신을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눈앞에 닥친 현실과 먹고살기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의무를 내던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는 무책임하다, 자기밖에 모른다는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합니다. 특히 가족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 명백합니다. 자연스럽게 내 욕구는 뒤로 미루고 일단 필요한 것을 하자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슬픈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당신들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다”라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분명히 어느 정도의 자유가 주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님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무한정의 자유와 선택은 허상인 경우가 많으며, 우리는 우리의 삶에, 그리고 우리 자신이라는 제약에 갇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삶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각자 위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설령 지금 자신의 모습대로 살고 있지 못하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혹은 더 큰 대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숭고한 일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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