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는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나태해도 되지 않을까요.
590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일곱 가지 대죄를 명문화했습니다.
교만, 시기, 탐식, 정욕, 분노, 탐욕, 나태. 그 일곱 대죄를 주제로 한 영화가 데이빛 핀쳐가 감독하고 브래드 피트, 모건 프리먼, 케빈 스페이시, 기네스 팰트로우가 나왔던 “세븐”이지요. 영화에서 “나태”했던 이는 침대에 손발이 묶인 채 미라화되어 죽기 직전에 발견되지요. 그레고리오 1세가 천명했던 나태에 대한 형벌은 ‘뱀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나태를 영어로 sloth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sloth는 나무늘보를 뜻하기도 합니다.
나무늘보는 원래 느릿느릿한 동물이지요. 나태한 것이 그 천성입니다. 바꿀래야 바꿀 수가 없는 태생적인 것이고, 만약 나무늘보가 부지런하게 마구 돌아다닌다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입니다. 나태를 sloth라고 하는 것, 그리고 sloth가 나무늘보인 것, 그리고 나무늘보는 원래 나태한 동물인 것은 일종의 하나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나태를 비난할 틈새를 찾기는 어렵지요.
어떤 사람은 나태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나태한 것에 대해서 비난을 하기도 하고 중세 시대에는 나태한 사람들을 단죄하기도 했었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태한 것을 가지고 그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나태한 사람에게 “너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약간 헷갈린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개개인이 근면해야만 공동체가 생존할 수 있고, 그래야 무임승차자를 최대한 줄일 수 있으며, 그래야 사회와 경제가 발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회에든 반드시 더 열심히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가려집니다. 모두 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비교적 더 열심히 하는 사람과 비교적 덜 열심히 하는 사람이 반드시 가려진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회에 항상 무임승차자가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높은 확률로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임승차자의 비율이 높다면 그 사회는 결국은 쇠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런 이들에게 “근면하라”는 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됐을 것이며, 그런 사회적 압력은 진화적 압력으로도 작용하여 비교적 더 많이 나태한 이들에 비해서 비교적 덜 나태한 이들이 더 많이 생존했겠지요. 그리고 그게 아마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한편으로 근면이라는 것은 주로 노동의 측면에서 성립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가 노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어떤 이들은 근면하게 노동하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세상에 기여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너무나 개인적인 것이라서 사회적으로 전혀 수용되기 어렵다면 그것은 개인의 아집이겠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열심히 하라”, “부지런하라”, “책임감을 가져라”는 말을 듣고 자랍니다.
그리고 그 말은 대부분의 경우 옳죠.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의 비중이 높아야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면서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사회나 경제는 존립하기 어렵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순간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빗겨나고 싶기도 합니다. 어떤 순간은 나태해져서 본성을 따르는 나무늘보가 되고 싶기도 하니까요. 매일 매일이 그렇다면 그것은 아마도 용인되기 어렵겠지만, 누구에게나 잠깐 숨을 돌릴 여유는 허락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매체에 나와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라,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 집중하라, 헌신하라는 말을 합니다. 그 말 역시 맞습니다. 그리고 나태가 권장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옳습니다. 하지만 가끔 나태해져도,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평소에 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주 걷고, 자주 일어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265) | 2025.06.19 |
---|---|
불확실성과 슈퍼 히어로 무비 (248) | 2025.06.17 |
"라떼는"이 일어나는 비율이 많게는 대화의 80%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전혀 듣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189) | 2025.06.10 |
너무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 사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느린 활동이 필요합니다. (228) | 2025.06.07 |
우리는 중요한 것에 시간을 쏟습니다. (170) | 2025.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