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셀이라고 불리는 커뮤니티가 있지요. 비자발적 독신 Involuntary Celibacy 을 InCel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인셀은 처음에는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구성됐던 집단이 왜곡되면 어떤 참극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예로 많이 제시됩니다.
비자발적 독신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성들로 구성되어 있고요.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처음에는 외로운 남자들끼리 모여 푸념도 하고, 서로 위로도 하고, 지지도 해주면서 험난한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얻는 가상공간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시점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이들 내부에서 왜곡된 생각이 자라나고 공고해졌던 것 같습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서로 그것에 동의하다 보면 매우 쉽게 반향실 효과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매우 극단적이고 편향된 아이디어도 놀라울 정도로 쉽게 수용되며, 그 사회에서는 그것이 상식이 됩니다. 이른바 파레토 법칙이라는 것이 있지요. 20%가 전체의 80%를 소유한다, 20%가 80%를 생산한다 등 여러 가지로 변주되지만, 그 의미는 결과의 80%를 산출해 내는 것은 원인의 20%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법칙을 가져와 상위 20%의 매력적인 남자들이 80%의 여성을 차지한다는 아이디어로 왜곡하고 받아들입니다. 결국 80%의 평범한 남자들은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박탈감에 빠져든 이들의 생각은 여성 혐오로 전개됩니다.
2014년 5월 23일 엘리엇 로저 Elliot Rodger 는 산타바버라 캠퍼스에서 총격, 칼부림, 차량 난동을 벌여 6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14명에게 부상을 입힙니다. 엘리엇 로저는 헝거게임의 조감독이자 영화 제작자인 피터 로저의 아들입니다. 그는 141 페이지짜리 선언문에 자신을 거부한 여성들에 대한 복수심과 증오를 여과 없이 표현합니다. 학살이 끝난 뒤 그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합니다. 그는 인셀의 영웅이 되며 그의 이니셜인 E. R. 은 일종의 심볼이 되었고, 인셀은 인셀이 저지르는 폭력을 E. R. 하기(Going E. R.) 이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2018년 4월 23일 알렉 미나시안은 트럭으로 10명을 살해하고, 16명의 사상자를 냅니다. 2019년 여성 행진의 날에는 한 남성이 유타 주프로보에서 열린 집회에서 “내 눈에 보이는 소녀들을 최대한 많이 죽이겠다”며 총기 난사를 계획하기도 합니다. 2021년 애틀랜타에서는 한 총격범이 마사지숖에 들어가 여성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여성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니콜라스 카의 <손 안에 갇힌 사람들>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최소 61명의 사상자를 낸 8건의 학살 사건은 자신을 인셀로 칭하거나 인셀과 관련된 글을 올린 남자들이 범인이라고 합니다.
편향된 생각이 극단으로 치닫고 그 생각을 폭력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결단을 내린 이가 실제로 그 행동을 결행하게 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예전 같으면 공유하기 어려웠을 생각들, 그리고 공유한다고 해도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아 매우 소수에 의해서만 지지받을 수밖에 없던 극단적 생각들이 이제 인터넷과 SNS라는 장벽 없이 의견 교환의 장을 통해 아무런 제약 없이 유통됩니다. 누구든 어떤 생각이든 말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언론의 자유는 우리가 가진 모든 자유의 근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악영향을 미칠 특정한 생각을 하지 말라, 특정한 생각을 말하지 말라고 제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게 가능해진다면 동일한 논리적 동치에 의해 우리에게 악영향을 미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그 생각을 말하는 것을 말하지 말라는 것 역시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는 것과 논리적 동치는 아닙니다. 폭력적 행동, 타인을 위협하는 행동,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행동이 정당화된다면 사회는 존속하기 어렵습니다. 무지와 폭력으로는 무엇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위로와 지지는 필요하지만 학살과 혐오는 우리의 정신을 파괴할 것임에 분명하니까요.
'조금 깊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를 무조건 받아들여 달라는 요구는 과연 적절한 것일까요. (259) | 2025.08.11 |
|---|---|
| 무엇인가를 배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의 중요성 | 방법론 학습의 중요성 (272) | 2025.08.01 |
| 알고리듬은 우리에게 추천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 코리 존슨 사건 Corey Johnson 사건 (293) | 2025.07.28 |
| 내 삶의 좋은 것들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것 (294) | 2025.07.25 |
| 알코올성 근시 Alcoholic Myopia | 알코올은 우리의 종결 욕구를 증폭시킵니다. | 가정 폭력의 55%가 음주 후 발생 (227) | 2025.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