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부를 해야 할까요. 공부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부를 함으로써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래야 새로운 상황에 닥쳤을 때 대응할 방법을 빠르게 배울 수 있습니다.
암기는 매우 중요한 학습 형태입니다. 요새는 수리 능력, 추론 능력, 창의력 등이 워낙 강조되고 있지만 암기한 지식만큼 강력한 지식도 없습니다.
암기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그 검색 속도입니다. 정확히 외우고만 있다면 ctrl+f를 누르고 검색어를 넣고 엔터를 누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결과를 산출해냅니다. 거의 천 분의 1초 단위이지요. 컴퓨터가 이 정도의 속도를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데이터 베이스의 크기가 커질수록 더 느려집니다. 저장 용량에 있어 인간의 뇌는 SSD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원하는 것을 검색해내고, 또 여러 개를 검색한 뒤 하나로 묶어내는 능력은 아직 인간의 뇌가 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 암기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고등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도 높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어떤 것을 추론해내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매우 고등한 능력으로 보지만,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었었다, 몇 번째 대통령은 누구이다, 어느 나라의 수도는 어디이다 등을 외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암기를 통해 우리가 가진 지식의 부피를 늘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을 하나의 구체로 비유한다며 그 부피를 최대한 늘리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구체 내의 다양한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며 네트워크를 이루고, 다양한 자극에 의해 다양하고 새로운 네트워크들이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지적 기량은 향상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지식의 구체의 부피를 늘리기 위해서는 지식들을 잘 쌓아서 축조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은 그냥 마구잡이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고 조직적인 사고가 필요하며 그 경험을 통해 나름 체득한 학습 방법론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비슷한 단어를 외우는 것이 더 쉬운 사람들이 있고, 읽었던 책의 페이지를 이미지로 떠올려 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취하든 각자의 방법론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지식의 구체의 지름을 늘려 나갑니다.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사건은 계속 발생하여, 우리는 반드시 세상에 대응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지식의 구체가 조밀하고 견고하고 크게 구성된 사람들은 지식의 네트워킹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고, 더 빠르게, 혹은 더 좋은 대응책을 구상해낼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지식의 구체가 협소하고, 내부의 네트워크 구성이 성기다면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뛰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학교에 다니고 뭔가를 배워야 하는 것은 그 지식 자체가 어디엔가 직접적으로, 실용적으로, 바로 내일 사용할 수 있길 기대해서가 아닙니다.
무엇을 배우는 방법을 배워야, 새로운 것을 수월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을 배우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새로운 세상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많이 안다고 무조건 뛰어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게 아는 것이 탁월해지는 방법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은 이제 과거보다 더 빠르게 변합니다. 예전에는 한 세대가 30년이라고 했었습니다. 인간의 생식 주기에 따른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30년이라고 하면 영겁의 시간에 가깝습니다. AI 등의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30년 뒤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예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기계가 우리보다 뛰어나지는 시점은 반드시 도래할 것입니다. 지식을 외우고, 저장하는 능력에서 우리가 기계를 이기는 것은 현재에도 불가능합니다. 학습 속도도 기계가 우리보다 빠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현실 세계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능력 정도일텐데 그것은 그저 가만히 있는다고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지식이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무지가 그 답일 수 없다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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