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희망은 "앞으로 몸을 굽힘으로써 더 멀리, 더 정확히 보려고 하는 것" | 프리드리히 클루게

RayShines 2025. 9.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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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무엇일까요? 언어학자 프리드리히 클루게는 희망을 “앞으로 몸을 굽힘으로써 더 멀리, 더 정확히 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희망에 대해서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갖고 싶은 것을 갖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조금 야박하게 이야기하면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렇게 폄하할 수는 없는 단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한병철의 불안사회라는 책을 읽던 중 프리드리히 클루게가 희망을 “앞으로 몸을 굽힘으로써 더 멀리, 더 정확히 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음을 알게 됐습니다.

한병철은 이에 대해 희망은 “먼 것, 미래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고 공감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도 알 수 있듯 희망은 “앞으로 미래에 내가” 무엇인가를 하거나 얻거나 하는 것에 대한 바람입니다. 과거를 희망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과거에 그렇게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후회나 회한이라고 부르지요. 그것은 지나간 것이고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의 과거의 산물이라고 본다면, 미래는 현재의 산물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가 미래를 바꿀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논리적 결론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연쇄 속에서 희망은 현재에서 미래를 보는 것,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멀리, 더 깨끗하게 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몸을 앞으로 굽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음 자체도 뭔가 밝습니다. 그래서 아마 더 희망적으로 들리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면 뭔가를 희망한다고 이야기할 때 부분적으로나마 수동성이 수반되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뭔가를 단순히 바라는 것,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복권에 당첨됐으면 좋겠다”, “청약에 당첨됐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 말입니다. 물론 복권에 당첨되려면 복권을 사야 하고, 청약에 당첨되려면 청약통장도 만들고 청약 신청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무작위성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따라서 그냥 바라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해왔던 터라 아마 클루겔이 말한 희망에 더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앞으로 굽히는 행위는 단순히 우리의 신체적 자세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멀리, 더 자세히, 더 정확히, 더 뚜렷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태도는 삶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적극적으로 구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거대한 세상의 힘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그리고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저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내일부터는 이걸 해야지, 다음 달부턴 이렇게 해야지, 내년이 되면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살아야지… 우리는 끝없이 미래의 자신에게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흐린 눈으로 뿌옇게 보이는 미래에 자신의 생각을 흩뿌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막연한 약속, 지키지 못할 다짐, 구체적이지 않은 계획들은 현재에 뒤로 기대어 앉아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나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몸을 굽혀 기대어 눈을 비비고 멀리 뚫어져라 직시하며 정말 나 자신을 염두에 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 그 행동 자체가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한 뒤 후회하고, 지키지 못할 다짐들을 무수히 한 뒤 까맣게 잊기도 합니다. 이것들이 절 절망시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희망하게 하지도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더욱 희망은 관념이 아니라 물리적 자세와 실질적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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