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도움을 주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세상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불운했던 사람들, 천재지변을 당한 사람들, 어쩔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지요. 자력으로 이를 이겨낼 수 없는 사람들은 분명히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적절한 때에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다시 자생력을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이들을 돕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사회나 국가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기꺼이 도움을 받는 것, 그것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이런 도움이 있으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고,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럽지 않겠죠. 물론 전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인 원조만을 바라는 이들, 즉 사회에 무임승차하는 이들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겠지만 이들을 부조 시스템에서 걸러내기 위해 정말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까지 만들면 안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해이는 감수해야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누가 봐도 도움이 필요한 것 같은데 한사코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자존심 때문이든, 체념 때문이든, 아니면 상황이 절대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절망 때문이든, 누군가의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고민이 발생하죠. 과연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이들을 억지로 도와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들을 억지로 돕겠다고 하는 이들은 과연 무조건적 선일까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강요하는 것을 일종의 폭력과 억압이라고 포괄적으로 해석한다면, 누군가에게 억지로 도움을 받으라고 하는 것 또한 압제적 행동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이 선의가 아니라 나의 우월감 때문이라면, 혹은 누군가를 도왔다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이기적 만족감 때문이라면 그것을 과연 도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 누군가를 동정한다는 것, 누군가를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선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일방적인 강요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너무나 처참하고 험악한 상황에 놓인 사람은 자신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고요. 왜냐하면 너무 깊은 어둠에 있는 이들은 감히 자신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울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누군가 도움을 내려주어도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그 손길을 찾을 수조차 없기 때문이겠죠. 정말 그럴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그렇다면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로부터 자원을 거두어들여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에게로 재분배하는 것이 아마 합리적일 테지만, 그게 무조건 옳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도덕적 해이가 더 심해지며 자원이 한쪽에 편중되는 경향이 발생하고, 그럴수록 도덕적 해이는 심해질 테니까요.
그러면 당장은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예전에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더 필요하면 언제라도 말해 주오."이것은 언뜻 보기에는 대단히 신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신사적이지 못하다. 받는 측도 정말 필요하지만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요, 혹시나 이렇게 대답하면 또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그럼 지금 더 주세요."진짜 신사라면 잠자코 주기만 하면 된다. 좀 더 필요하다면 언제고 말해 달라는 만큼 살뜰한 마음이 가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억지로 상대방 입으로 꺼내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인간 심리는 알아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정말 이럴 것입니다. 지금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니까요.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잠자코 주는 것이 신사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어둠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그것은 행운일 것입니다. 그 두 가지를 아직 갖추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저 앞으로 천천히 나아갈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빛이 보이지 않을까요. 적어도 전 그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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