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 마드야미카의 경전에는 도깨비에게 잡아먹히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길을 가던 한 남자가 폐가를 발견하고 거기서 하루 쉬어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자정이 됐는데 도깨비 하나가 시체를 들고 들어와서는 그의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조금 있다 이 도깨비를 쫓던 다른 도깨비가 뒤이어 들어와서는 서로 그 시체가 자신의 것이라며 싸우기 시작합니다. 싸움이 끝날 것 같지 않자 두 도깨비는 그 남자에게 그 판결을 내려달라고 합니다. 그 남자는 어차피 죽을 것 같으니 사실대로 “먼저 들어온 도깨비가 시체를 갖고 들어왔다”라고 합니다.
화가 난 두 번째 도깨비는 그 남자의 팔을 하나 뜯어냅니다. 그러자 첫 번째 도깨비가 시체에서 팔을 하나 뜯어내 그에게 붙여줍니다. 두 번째 도깨비는 차례차례 그 남자의 신체 일부를 뜯어냈고, 그럴 때마다 첫 번째 도깨비는 시신의 그것을 떼어내 그에게 붙여줍니다. 마지막에는 머리까지. 그의 몸이 신체의 그것으로 완전히 바뀌자 두 도깨비는 그 남자의 몸을 모두 먹어치우고는 사라집니다.
도깨비들이 사라지고 그는 엄청난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몸은 도깨비들이 모두 먹어치웠습니다. 그의 몸은 다른 누군가의 몸으로 완전히 대체됐습니다. 그런데 그의 의식은 여전히 그가 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일까요, 아니면 그가 아닐까요.
키아누 리브스가 주인공이었던 <코드명 J>, 원제는 Johnny Mnemonic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조니는 자신의 머릿속에 장치된 칩에 다른 사람의 기억을 다운로드 받아 옮겨주는 배달부 역할을 합니다. 그는 뇌에 이 칩을 인스톨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모두 지워버립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기억을 갖게 된 그는 조니일까요, 아니면 기억의 주인일까요.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1의 세 번째 에피소드 “The Entire History of You”도 비슷한 내용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인간들은 뇌와 눈에 어떤 장치를 갖고 다닙니다. 눈에는 작은 캠이 있어서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모두 저장됩니다. 그리고 그 귀의 뒤에는 마치 USB 같은 포트가 있어 기억을 이동할 수 있는 저장 장치를 꽂을 수 있습니다. 손에는 작은 조그, 일종의 리모컨, 가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필요할 때 조그를 이용해 저장된 영상을 과거로 돌리고 다시 플레이합니다. 그러면 눈앞에 과거의 일이 현재처럼 펼쳐집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기억을 거래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귀 뒤에 꽂은 뒤 조그를 돌리면 그 기억의 주인의 시각적 경험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집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다른 이의 기억을 경험하고 있는 주체는 나일 것입니다. 일종의 영화일 테니까요. 그런데 그 기억이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다면 타인의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는 나는 나일까요, 아니면 그 사람일까요. 위의 영화 조니처럼 말입니다.
위의 세 사례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SF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면 난 나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합니다. 나의 기억, 경험, 의식은 그대로 나인데, 내 몸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면 그것은 나인가.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는 그 반대입니다. 내 몸은 그대로이지만 내 기억이 바뀐다면 그것은 나인가 아닌가.
우리의 몸은 단순히 어떤 물리적 실체에 그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우리의 몸으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우리로 느끼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팔다리가 절단된 이후에도 감각을 느끼는 환상지를 호소하며 혼란에 빠지는 이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은 우리가 세상의 경험을 뇌로 연결하는 일종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합니다. 몸이 달라지면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뇌가 세상을 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논리로 물리적 실체가 아닌 우리의 기억이라는 추상적 실체 역시 나의 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나의 경험은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 몸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경계를 설정합니다. 운동 유튜브를 보면 신경계 자극, 신경계 피로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운동에 있어 근육뿐만 아니라 신경, 그러니까 내 생각으로 대변되는 나의 심리적 한계 혹은 역량, 이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생각이나 심리와 같은 추상적 개념이 나의 물리적 실재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내 몸과 내 마음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은 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계량할 수 없습니다. 몸이라는 물리적 실체에서 어떤 식으로 마음, 의식, 영혼, 감정, 생각이라는 추상적 실체가 창발 하는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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