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정말 사교육의 왕국이지요. 사교육비는 가계 지출에서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사교육비는 거의 준조세에 가까운 성격의 지출이 됐습니다.
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38.9%가량입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국민의 61% 정도만이 근로소득세를 납부합니다. 세금을 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돈을 번다고 해서 그것 전체에 대해서 세금을 징수하진 않습니다. 기본적 생활이나 개인으로서의 품위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 쓰이는 돈, 즉 비용은 수입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에까지 전부 세금을 매기면 숨도 못 쉬고 살아야 하니 그것은 소득에서 빼줍니다. 만약 근로소득 전체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쓰이게 된다면 이 부분은 전부 공제가 되어야 하니 근로소득세는 징수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소득을 공제받으며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인구가 전체의 39%라는 것입니다. 이는 소득이 적은 인구가 많으며, 기본적 생활이 드는 비용이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8.3%라고 합니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비율은 61%인데, 다시 말해 근로소득에 대해서 세금을 내는 사람이 10명 중 6명인데, 학원비나 과외비를 내는 사람은 10명 중 8명 정도라는 것입니다. 세금을 내는 사람보다 학원비를 내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뭔가 이상한 상황이죠.
세금을 내는 사람이 적어서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로소득세를 모두 면제받을 정도로 소득이 적을지도 모르는 인구까지도 모두 사교육에 올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이에 대해서는 정부가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합니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뜻이지요. 12년의 교육을 거의 무상에 가깝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 인구의 80% 정도가 사교육에 비용을 추가 지출하고 있습니다. 조사에 따라 수치는 다르지만 전체 가계 소비지출 중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에 가깝습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데 소득의 거의 전체가 필요해 근로소득세를 면제받아야만 하는 가계에서 소득의 6%를 학원비로 내야 한다면, 분명 다른 부분에서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어야 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안 그래도 힘든 삶인데 더 힘든 삶을 살아야만 하겠지요. 공교육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유야 많을 것입니다. 당연히 공교육으로는 부족하니까 학원을 보내겠죠. 그렇다면 무엇에 부족할까요. 경쟁력이 있는 대학교에 가거나, 전공을 고르기 위해서는 공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학교 공부만 해서는 나중에 먹고살 수가 없다는 절박함과 불안감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고, 부모들은 본인들의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의 교육은 반드시 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게 됩니다. “나처럼 살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람직한 국가나 사회가 가져야 할 조건 중의 하나가 그 구성원들이 미래에 대한 긍정적 조망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살면 호화롭게는 살지 못해도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모든 사람들이 의대에 가기 위해 목을 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그렇지가 않은 것이지요. 의사가 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부모들이 꽤나 많으니까요. 좋은 사회의 또 다른 조건 중 하나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 즉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하고 촘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직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해서 다른 직업으로 바꿔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그 이음매에서 다음번 기회를 위한 준비를 할 때 사회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좋은 사회의 첫 번째 조건이 다시 등장합니다. “내가 지난번엔 실패했지만 이번에 열심히 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결국 다시 남들이 다 추구하는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는 절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실패하면 끝이다, 다른 직업으로 갈아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차피 길이 하나밖에 없다면 돌아갈 필요 없다, 이번에 해내야 한다, 이런 악순환은 모든 이들이 한 가지 목표만 보고 살게 만들고, 형편에 따라 미래를 설계할 여지는 모두 지워버리고, 아무리 어려워도 과외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교에 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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