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필연이지만, 괴로움은 나의 선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 정도는 깊이 생각해 볼 문장인 것 같습니다.
고통은 말 그대로 고통입니다. 아픔을 의미합니다. 반면 “괴로워하다”라는 의미의 영단어 suffering의 라틴어원인 ferre는 “to carry, bear”, 즉 “나르다” 혹은 “견디다”라는 뜻입니다. 고통을 짊어지고 나르며 견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적극적으로 고통을 내 삶으로, 내 안으로 퍼나르기 때문에 괴로워지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살면서 고통이 전혀 없으면 좋겠지만, 인생에 있어 고통은 반드시 수반되는 대전제입니다.
어쩌면 고통 없는 삶이란 기쁨 없는 삶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 없이는 기쁨이나 행복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는 반드시 같이 다닙니다. 뇌에서도 그렇습니다. 기분 좋은 감정이 발생하면 우리의 뇌는 이를 제압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작동시킵니다. 쉽게 말해 도파민이 우세한 상황이 되면 도파민 신호를 저감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가동시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도파민 신호가 너무 적으면 그것을 끌어올리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활성화됩니다. 이를 이른바 음성 되먹임이라고 합니다. 생명체의 기본적 작동 방식은 늘 이렇습니다. “어느 한 가지가 너무 강하면 줄인다, 어느 한 가지가 너무 부족하면 북돋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빛과 그림자가 늘 함께 다니듯이 행불행, 쾌락과 고통은 늘 함께 다닐 수밖에 없나 봅니다.
그러나 고통이 상존한다고 해서 늘 괴로워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고통은 필연이지만, 그 고통을 내 안으로 끌어들인 뒤 한없이 괴로워만 하며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High Intensity Interval Training, HIIT)을 하다 보면 정말 이 말을 절감하게 됩니다. 심박수가 마구 오르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근육들은 타오르는 것 같습니다. 고통스러운 느낌 그 자체입니다.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 이것이 너무나 괴롭다,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는 대신, 이것을 끝까지 해내고 나면 반드시 좋은 기분과 성취감이 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정한 운동을 해내게 됩니다. 괴로움은 나의 선택입니다. 고통스럽지만, 이것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고통을 받아들이면 운동이라는 행위가 괴로움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위의 예를 삶의 모든 것에 적용하긴 어렵습니다. 큰 사고를 당했거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괴롭지 않다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그런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건 당신의 마음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 놀리는 것처럼 느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의 고통과 괴로움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삶의 어떤 부문에서 우리는 고통과 괴로움을 분리하고, 고통을 받아들임으로써 괴로움을 차단하는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다른 곳에서도 그런 전략을 써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누구나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 한계, 시간적 한계, 육체적 한계, 정신적 한계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속박에서 갑자기 자유로워질 순 없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의 한계의 외연을 넓혀 나갈 수 있습니다. 한계까지 다다랐을 때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을 괴로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한계를 조금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한계를 넓혀 나가면 아마도 우리는 서서히 발전해나가지 않을까요. 세상의 고통은 무한하지만 괴로움은 나의 선택인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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