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것들에는 상처와 흠집이 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우리의 물건에도 말입니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을 모두 합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자아에 대해 “한 사람의 자아는 그가 그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총합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정신력, 옷과 집, 아내와 자녀들, 조상과 친구, 명성과 업적, 소유지와 말, 보트와 은행계좌까지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 동일한 감정을 준다. 그의 것이 점점 많아지고 번창하면 승리감을 느낀다. 그의 것이 줄어들고 사라지면 버림받고 있다고 느낀다. 비록 정도는 다를 수도 있지만 그가 소유한 것 각각에 대해 느끼는 방식은 모두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인생과 자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모든 것들의 적층된 총합입니다.
물질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모두들 이야기하며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를 배격하지만 물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에 끌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지만, 돈을 무조건 천하고 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의 생존을 어렵게 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한 물건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스마트폰, 랩탑, 시계, 자동차, 집 등 모든 것이 우리의 자아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자아에 상처를 내는 말을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고통스럽다고 느낍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억지로 들추거나, 약점을 공격하면 우리의 정신에도 생채기가 나고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습니다. 같은 논리로 우리가 가진 물건에 흠집이 나면 그것은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고 우리의 인생의 일부인 부속물이 훼손된 것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것 역시 우리에게 고통을 유발합니다. 정신적 고통만큼 크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나의 자아가 물건들에 너무 크게 의탁해 있다면 고통은 그에 비례해 커질 것입니다.
선형적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급수적으로 커질 가능성도 꽤 큽니다.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 나의 차, 나의 집이 너무 비중을 차지한다면 차에 흠집이 나거나, 집 마루가 무엇엔가 찍히거나 했을 때 그 고통이 필요 이상으로 커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그거 그냥 물건이잖아”라고 말한다면 화를 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걸 사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먹을 것도 못 먹고, 잠도 줄여가면서 일을 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나의 인생과 트레이드한 그 무엇입니다. 나의 피와 땀, 시간과 에너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노력을 들여서 산 것, 큰돈을 들여서 한 것,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 - 대표적인 것이 집이지요 - 을 누군가 폄하할 때 분노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단순히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어찌 보면 나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물건에 난 흠집이 나를 너무나 큰 고통으로 밀어 넣는다면,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이 물건이 나에게 매우 소중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물건이 나의 역량과 그릇과 분수에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미 산 것이니 어쩔 수 없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렇게까지 괴로워해야 한다면 그것이 나의 자아와 인생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을 좀 줄여봐야 합니다. 물건은 분명 중요한 것이지만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반면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단순히 스트레스가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어야 우리는 다음번에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음번에는 흠집을 안 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다음번에는 더 합리적인 구매를 할까, 어떻게 하면 가족들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에게 더 친절하게 대할까 등 우리에게 있어 더 중요한 결정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이미 나의 일부가 된 물건에 난 흠집이 우리의 정신에까지 상흔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물질의 흠집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신적 상흔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일시적인 것도 아닙니다. 뭐가 더 중요한지는 우리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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