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사랑받아야만 할 테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불운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꼭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보고 나면 너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아서 미루고 있었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를 추석 연휴 기간에 보게 됐습니다. 갑자기 왜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연휴라서 마음의 여유가 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원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동명의 드라마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 소설의 분위기와 달리 영화는 업템포의 음악이 계속해서 나오고,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감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들이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는 탓에 뮤지컬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이 영화를 비판한 이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운과 불행이 쌓여가는 마츠코의 삶이 화려한 색감과 알록달록한 놀이동산의 이미지, 그리고 경쾌한 음악과 대비되며 오히려 더 처량하고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받아야 적절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인간도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에게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은 매우 당연한 상수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어려우며, 인간처럼 자립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개체에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부모가 없으면 생존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살펴주는 존재에게 생명을 100% 의탁하겠다는 의식적, 무의식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는 개체가 더 유리할 것이니까요. 그런데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던 것이 그 자리에 없다면 그 개체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마츠코가 그러합니다.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아래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영화 상에는 그녀의 어머니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녀는 맏딸이고, 남동생이 있고, 몸이 아픈 여동생이 있습니다. 남동생은 남자라서 아마도 충분한 관심을 받았을 것 같고, 여동생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늘 아버지의 아픈 손가락이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웃지 않습니다. 늘 마음 한켠에는 막내딸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움으로 인한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웃게 하기 위해 마츠코는 무던히 애를 쓰지만 어렵습니다. 그녀에게 여동생은 애증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연히 짓게 된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아버지가 웃는 모습을 본 뒤 그녀는 걸핏하면 그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웃게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갈구합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기모노를 입고 어엿한 성년이 된 날 그녀의 아버지는 여동생은 기모노를 입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슬퍼합니다. 자신이 성인이 될 날에도 여동생 걱정뿐인 아버지가 약속했던 그녀는 또 그 표정을 짓습니다. 이번에 아버지는 웃지 않고 장난치지 말라고 나무랍니다. 이제 다 자라 버린 그녀의 익살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부친에게 존중받는 성인도 아닙니다. 그녀의 정신적 성장은 그 자리에 멈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가 바라던 바대로 교사가 됐지만 제자의 절도를 어떻게든 수습하려던 그녀는 자신이 혐의를 대신 뒤집어쓰겠다는 잘못된 결정을 내립니다. 가슴 아픈 진실을 직면하는 대신, 답답하고 어려운 순간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익살로 넘겨왔던 그녀의 유아적 행태는 성인들의 세계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직업을 잃게 되고, 그 모든 것이 여동생 때문이라는 생각에 여동생에게 분노를 터뜨린 뒤 집을 뛰쳐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녀의 인생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리막을 그립니다. 그녀는 매번 자신을 사랑해 줄 누군가를 찾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녀, 늘 병약한 여동생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던 그녀는 자신이 온당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자신을 결함투성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늘 자신을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대상을 곁에 둡니다. 그런 결정이 쌓여나가며 그녀의 삶은 파국을 향합니다. 자신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던 친구가 자신을 따듯하게 반겨주는 남편과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더 확실한 어둠으로 밀어 넣습니다.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면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한 선택입니다. 아등바등 노력해도 더 밝은 곳으로 갈 수 없다면 그냥 포기하고 지옥을 받아들이면 편안해지니까요. 마지막 순간 그녀는 친구의 도움을 빌어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내던져버린 친구의 명함을 찾으러 간 자리에 중학생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놀고 있습니다. 그녀는 원래 중학교 선생님이었죠. 자신의 삶이 이탈하기 전을 떠올리며 중학생들을 꾸짖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그녀도 변했지요.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인간에게 사랑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생존에도 그렇고, 성장에도 그렇고,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누군가를 사랑해 줄 수 있다면 아끼지 말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면 그 사랑을 한껏 들이마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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