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고 써보는 감상기입니다. 오래전 영화이긴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조제라는 이름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의 이름입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죠. 사실은 저 말 앞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지만 뒷 문장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그 부분만 유명해진 면도 없지 않습니다. 사강은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것이 분명하지요. 그녀의 소설 역시 그렇습니다. 영화 상의 쿠미코, 즉 조제 역시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애가 있어 다리를 쓸 수가 없습니다.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은 그녀의 몸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할머니는 장애를 가진 그녀가 부끄러워, 혹은 그녀가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그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갈 때에도 유모에 그녀를 싣고 담요로 꽁꽁 싸맵니다. 마음껏 세상을 탐험할 수 없는 그녀는 할머니가 주워다 준 책을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런 그녀의 삶에 츠네오라는 대학교 4학년 생 남자가 들어옵니다. 둘은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집니다. 츠네오는 그녀를 부모님에게 소개하려고 마음 먹지만 부모님 댁으로 가던 도중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동생은 그에게 “지쳤어?”라고 묻습니다. 아마도 그는 현실의 벽 앞에 서서히 지쳐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둘은 바다를 보러 가고, 물고기 모양의 조명이 있는 모텔에서 잠을 잡니다. 그리고 둘은 헤어집니다. 더 정확히는 츠네오가 “도망칩니다.”
호랑이는 조제에게 어떤 두려움의 상징입니다.
“남자가 생기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생각했고, 남자가 생기지 않으면 호랑이를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고 마음먹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조제는 자유롭지만 사람과 세상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호신용으로 칼을 갖고 다니고 러시아제 권총인 토카레프를 사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편이 생기지 않는 이상 호랑이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게다가 그녀는 호랑이가 달려들어도 도망칠 수조차 없으니까요. 츠네오와 함께 호랑이를 보러 간 그녀는 유모차에 앉아 츠네오를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두려움을 애써 이겨냅니다. 유모차에 앉은 그녀는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성장하지 못한 유아입니다. 그래서인지 아가들이 쓸 것만 같은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녀는 물고기를 좋아합니다. 아마 다리가 없어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녀는 움직이는 물고기 조명이 나오는 모텔에서 “조개도 헤엄을 친다”고 말합니다. 츠네오는 “조개는 헤엄을 못 친다”라고 답합니다. 그녀는 좁은 집에서조차 비좁은 벽장 안에서 갇혀 지냅니다. 마치 껍질 안에 갇혀 있는 조개처럼 말입니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다리를 팔로 끌고 다닙니다. 조개도 그렇습니다. 조개도 발이 있긴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어디든 움직이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몸을 끌고 다닐 수 있을 뿐이며, 물살에 따라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도 합니다. 그녀는 발을 가졌지만 끄는 용도로만 쓸 수 있는 조개보다는 발이 없더라도, 다리를 잘라버리더라도,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물고기가 되길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츠네오와의 이별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작별 선물로 그에게 외설스러운 잡지를 건넵니다. 그리고 츠네오는 그녀를 떠나 예전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 길을 걷다가 오열합니다.
사랑이란 왔다가 가는 것이기는 합니다. 그것이 몸이 불편한 이들의 사랑이든 아니든 사랑이란 그런 것이지요. 만남과 헤어짐은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 일어나든지 특별하거나 희귀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삶은 흘러갑니다. 조제는 휠체어를 사자는 츠네오에게 “니가 업어주면 된다”며 거절합니다. 그러나 츠네오와의 이별 뒤 그녀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얼굴과 몸을 가리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다닙니다. 사랑을 받은 그녀의 경험은 이제 그녀가 호랑이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게 해 줬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제 물고기가 되어 세상을 헤엄치고, 삶은 또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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