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conversation hog 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대화를 독점하는 사람을 돼지에 빗대어서 비꼬는 말이겠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말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강의나 연설을 할 때 정도 빼놓고는 한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하면서 시간을 독점하는 것이 거의 용인되지 않습니다. 대화라고 하면 말 그대로 말이 오가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대화를 독점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경우가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상하 관계가 명확한 경우 계급적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끝없이 하는 경우입니다. 재미없는 상사의 농담을 억지로 들으면서 웃어줘야 하는 것이 이 경우겠지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대화를 독점하는 사람이 훼방꾼이다.”
시간은 소중한 자원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 시간을 공유할 때는 더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매우 가치 있는 이야기라서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대부분 그저 뻔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슬픈 역설이 한 가지 발생합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라든지, 아니면 재미있는 이야기라든지, 아니면 공감을 살 수 있는 이야기라든지, 아니면 지혜로운 이야기 등등 남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을 아낄 때가 많습니다. 언제 말해야 할지 알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할 능력이 아직 부족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자신의 이야기를 별로 흥미 있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야기를 할 기회가 그다지 많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 중 일부는 기회가 주어지면 지루하고 반복되는 뻔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흐르지 않고, 저 사람은 말을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은 타인의 반응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들으나마나 한 비효율적인 이야기를 계속해서 합니다. 많은 이들이 견딜 수 없는 시간이 됩니다. 여러 명이 회의를 할 때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되지요. 그래서 회의라는 것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회의를 통해 새로운 생각이 나올 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회의 전에 참여자들이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미리 공유하고 회의에서는 결정만 내리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회의가 아니더라도 두세 명, 서너 명이 이야기를 나눌 때 누군가 말을 하면 말을 자르거나, 그 사람이 하고 있던 말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 말의 내용 중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을 끌어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지요. 이들이 바로 conversation hog, 즉 대화 돼지이자 대화 훼방꾼입니다. 대화란 듣는 것이 절반 이상이고,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에 적당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남은 절반의 절반 이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것이 내가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대화는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양측이 서로의 말을 충분히 듣는다면 대화가 끝나고 나서도 뭔가 만족스러운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말만 듣고 대화나 회의가 끝나버리면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명령, 성언, 성토, 강요 등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럴 거면 나를 왜 불렀지 하는 의문이 들면서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덤입니다.
더 큰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 성인이 되고 나서는 누군가에게 “당신이 대화를 독점하고 있으니 주의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대단한 결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한테야 “상대방 말을 잘 듣고 상대방도 말할 기회를 줘야지”라고 가르칠 수 있으나 성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이상하죠. 서로 눈치껏 해야 되는 부분이니까요. 그러니 이런 훼방꾼들의 이 나쁜 습관이 고쳐질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그러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고 앞에 앉은 사람이 따분한 표정으로 시계를 들여다봐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탐욕스럽게, 게걸스럽게 사료에 코를 파묻는 돼지처럼 대화를 먹어치우는 이런 이들을 결국 우리는 피하게 됩니다. 시간을 적절히 나누는 것은 성인끼리 서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일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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